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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이번에도 깜짝카드 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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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의 방북으로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첫 북·미 대화가 이뤄지지만 성과는 제한적일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북·미 대화에 임하는 미국의 태도가 소극적인 인상이 짙기 때문이다. 이는 2일 방한(訪韓)해 우리 정부와 협의를 가진 켈리 차관보의 말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최성홍(崔成泓)외교통상부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이번 회담은 북측에 대량살상무기(WMD) 개발·확산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을 전달하고 북측의 의견을 듣는 한편 이를 상호간에 평가하는 회담"이라고 자리매김했다. 북·미간에 합의가 이뤄지는 회담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이번 회담이 북·미 간의 전환점이 될 것이냐"는 기자들의 물음에도 "시작에 불과하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켈리 차관보는 본국의 훈령을 받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말해 미측이 이번 회담을 입장 타진용으로 보고 있음을 내비쳤다.

미국이 이처럼 북·미 회담에 '선'을 긋고 나선 것은 국내외 요인 모두를 저울질한 결과로 보인다. 첫째는 북·미 관계가 급물살을 타게되면 올해 초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것 자체가 모순에 빠지게 된 점도 고려했을 수도 있다. 이라크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도 북·미 관계의 속도 조절의 요인으로 보인다. 일부에서는 북한 문제를 한국의 차기 정권과 본격적으로 다뤄나가기 위해서라는 지적도 한다.

북·미 간에 그동안 WMD 문제 등 안보 현안에 대한 실무 논의가 없었다는 점도 회담 성과에 대한 기대를 낮춘다. 북·미 간에는 북한 뉴욕대표부와 미 국무부 간의 채널이 열려 있지만 북·미 간 의제 문제 등 깊숙한 얘기는 거의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북·미 대화는 지난 1년여 동안 수차례 비밀 실무 접촉을 거쳐 성사된 북·일 정상회담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나 변수도 있다. 북한이 최근 개혁·개방 행보에 미뤄볼 때 파격적인 제안을 해올 가능성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의 체제 보장을 전제로 핵 사찰 전격 수용이나 미사일 개발·수출 중단을 약속할 경우 미국의 태도는 달라질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켈리 차관보에게 크게 두 가지의 메시지를 전했다. 하나는 북한의 WMD 개발·확산 등 미국이 우려하는 현안과 북측 요구사항 해결을 위한 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리는 이번 북·미 대화가 북한 문제를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해법을 마련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주문이다. 여기에는 북한 문제를 대화로 풀어가야 한다는 뜻도 숨어 있다.

다른 하나는 "북한이 변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경제개선 관리 조치, 신의주 특구 지정,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인정을 통한 대일 관계 개선 움직임 등 북한의 최근 동향은 개혁·개방 의지를 보여준다는 입장을 미측에 전했다. 북한의 변화에 발맞춘 대응을 당부한 것이다.

서울=오영환 기자,도쿄=오대영 특파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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