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절한 천재 '아리아가'를 아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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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라벨의'스페인 광시곡',림스키 코르사코프의'스페인 기상곡', 샤브리에의'에스파냐', 랄로의'스페인 교향곡'….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음악이다. 하지만 이들 작품은 스페인이 아닌 다른 나라 출신 작곡가들이 쓴 것이다. 강렬한 민속적 색채로 수놓인 스페인 음악은 이국 정서를 추구했던 낭만주의 작곡가들에게 풍부한 음악적 소재를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정작 스페인 음악은 서양 음악사의 주류(主流)에서 밀려나 있었다. 널리 연주되는 관현악곡으로는 파야의 '삼각모자''스페인 정원의 밤', 로드리고의 '아란후에스 협주곡' 정도다.

오는 13일 첫 내한 공연을 하는 스페인의 카다케스 오케스트라가 '스페인 음악의 복권'을 외치며 후안 크리소스토모 아리아가(1806∼26)의 '교향곡 d단조'를 간판 프로그램으로 내세운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국내 초연인 이 작품은 동시대에 활약했던 모차르트·슈베르트의 교향곡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스페인 빌바오 태생으로 20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요절한 천재 작곡가가 남겨 놓은 유일한 교향곡이다.

14세 때 오페라를 작곡했던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스페인 음악사가 크게 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아쉬움 때문일까. 1933년 빌바오에서 아리아가 기념관과 기념협회를 설립, 그가 남긴 작품 전곡을 출판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카다케스 오케스트라의 모토는 음악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무명 작곡가를 발굴하는 것이다.

베토벤·브람스·차이코프스키 등 판에 박힌 레퍼토리를 매일같이 연주해야 하는 오케스트라 생활에 싫증을 느낀 유럽 전역의 젊은 연주자들이 이 악단에 합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카다케스는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극찬했던 스페인 남부 코스타 브라바 해안의 항구도시다.

1988년 소프라노 빅토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피아니스트 알리치아 데 라로차 등 스페인이 낳은 거장들이 이곳에서 음악제를 시작했다.

이 페스티벌의 상주 교향악단으로 활동 중인 카다케스 오케스트라는 영국 출신의 네빌 마리너 경이 수석 객원지휘자로 있다.

이번 공연은 5일부터 홍콩·싱가포르·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11개국에서 펼쳐지는 '도요다 클래식 2002'의 일환이다. 독일·프랑스·이탈리아·러시아 음악에 밀려 자주 접할 기회가 없는 스페인 음악의 정취에 흠뻑 빠져 볼 수 있는 기회다.

피아니스트 출신의 지휘자 필립 앙트로몽(68)이 지휘봉을 잡고 작곡가로도 활동 중인 기타리스트 호세 마리아 가야르도 델 레이가 협연한다.

아리아가의'교향곡 d단조'외에 로드리고의'아랑후에스 협주곡',알베니스의'이베리아'중 '투리아나'를 들려준다. 알베니스의'이베리아'는 원래 피아노 모음곡으로 작곡되었으나 카다케스 오케스트라가 신예 작곡가 호세 루에다(41)에게 위촉해 특별히 관현악곡으로 편곡했다.

투리아나 지방의 전통춤인 세비야나와 투우사의 행진을 묘사한 경쾌한 작품이다. 또 첼리스트 정명화씨가 하이든의'첼로 협주곡 C장조'를 협연한다. 공연 개막 오후 4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599-5743.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lull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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