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군대물품 없는게 없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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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948년 건군 이후 우리는 두 차례 전쟁을 겪었다. 50년의 한국전쟁과 65년의 베트남 파병. '상기하자 6·25' 따위의 전 시대 구호는 낡은 전리품처럼 기억에서 빛바랬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삶의 일부로 들어앉은 '그 전쟁이 남긴 세목(細目)'들조차 서둘러 내던지고 잊어버리는 것이 옳을까. 서울 청계천8가에서 작은 골동품 가게(둥지갤러리)를 운영하는 문승묵(文承默·46)씨는 4년여 전부터 군장(軍裝) 수집에 열을 올려온 매니어다. 1일 국군의 날을 앞두고 그를 만났다.

5공 시절 총리(87년)를 지낸 김정렬(金貞烈·49년 초대 공군총참모장과 54년 공군참모총장 역임)장군이 아끼던 모형 비행기를 비롯해 자필 이름이 씌어진 필통, '단장 대령 장세동'이라고 적힌 명패, 김복동 장군의 상아 지휘봉과 노태우 대통령이 오종록 장군에게 준 지휘봉이 얼른 눈에 띈다.

그가 내놓은 것에는 일상적인 군용품들이 많다. 큼직한 양은 밥그릇, 건빵봉지, 칫솔로 만든 도장, 은제 스타 계급장, 군에서 자체 제작한 각종 라이터와 램프·주전자·영수증까지.

수집 동기를 물어봤다.

"부친(문영한씨)이 공군 의무감 출신이어서 보고 자란 것들이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저는 군장들을 '군사 문화재'라고 생각합니다. 군사문화는 무조건 악이나 퇴물로 치부하고 서둘러 기억마저 폐기처분하는 건 잘못입니다."

문씨는 전쟁기념관 등과 자료집을 만들려 했으나 허사였다.

"소장품 중에 진기한 부대 마크가 제법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1유격여단·제2유격여단 마크 같은 것들인데 이 부대들(김신조가 넘어왔을 때 긴급히 만들었던 부대다)은 없어졌습니다. 주한 미군 중에 마크와 패치들을 소장하는 사람을 알게 돼 자료집을 만들자고 제안했더니 흔쾌히 수락하더군요. 전쟁기념관에 이를 제안하는 팩스를 보냈더니 '군 비밀인데 낼 수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불가판정을 내리는 겁니다. 군사적 사료들을 데이터화하는 작업에 외국인보다 기념관 측이 더 소극적인 게 속상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끼는,한국전쟁 때 사진 한장을 공개했다. 1951년 5월 20일 통영여자중학교 분교에서 촬영된 학도수색대원 30명이 함께 찍은 것이었다.

사진 앞면 구석에는 '수색대'라고 적혀 있고 뒷면에는 학교 이름이 표시돼 있었다. 학도병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였다.

그는 군사 문화가 우리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전부를 배척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애국심·단결력과 희생정신…. 무엇보다 한 시대의 비극을 통해 배우는 공부 또한 귀중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문씨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갤러리의 소품들이 숨가쁘게 흘러온 우리의 현대사처럼 느껴졌다.

문씨는 문득 증명서 하나를 내게 건넸다. 김의분이란 이름이 적힌 피란민 증명서(1951년).

이 너덜너덜한 서류를 쥐고 불안과 슬픔에 떨며 먼 길을 걸었을 주인공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상국 기자

isom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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