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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골동품' 대장장이들 솜씨 자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작업복의 앞자락을 열어젖힌 대장장이는 벌겋게 단 시우쇠 머리를 두들겨 둥근 모양으로 다듬느라 흐르는 땀을 훔칠 새도 없어 보였다. 토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2002 대장장이 프로젝트'의 현장은 가을 햇살 아래 더 붉게 물드는 듯했다.

관람객들이 모여들자 조개탄이 잘 타오르도록 풀무질을 하던 조수의 손길이 바빠졌다. 정원을 그들먹하게 메운 사람들이 이제는 보기 힘들어진 대장간 풍경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까치발을 하고 서서 진지하게 쇠다루는 대장장이들을 지켜봤다. 여기저리 흩어져있던 쇠들이 가늘게, 넓게, 둥글게, 구불구불하게 모양새를 바꾸며 촛대나 대문장식·책꽂이·벽걸이 등으로 변신하는 모습이 마술같다.

'2002 대장장이 프로젝트'는 핀란드·헝가리·에스토니아·폴란드·일본에서 활동하는 대장장이 예술가들 18명을 한자리에 불러모은 워크숍 겸 전시회다. 9년 전 핀란드로 건너간 안애경(문화기획자)씨가 대장장이 전통이 잘 살아있는 북유럽을 여행하며 접한 기술과 아이디어를 한국에 보여주고 싶어 행사를 마련했다.

대장장이 일이란 쇠를 불에 달구고 두들겨서 농기구와 생활용품부터 장식품·예술작품까지 온갖 물건을 만드는 것으로 철기 시대부터 내려온 인류의 오랜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그 의미있는 삶의 양식이 산업사회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북유럽을 돌면서 안씨가 부러웠던 것은 거기선 대장장이 작업을 현대로 이어 문화예술로 새롭게 보존하고 있는 점이었다. 특히 그는 2000년 8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렸던 '국제 대장장이 페스티벌' 현장에서 그이들이 노동과 놀이를 분리하지 않고 한몫에 즐기는 데 충격을 받았다.

안씨는 핀란드 문교부와 폴란드 외무부의 도움을 얻어 북유럽에서 손꼽히는 대장장이들을 선정해 작품만이 아니라 한국에 직접 와 실연 프로그램을 열기로 했다.

이번 한국에 온 작가들은 모두 각 나라에서 손꼽히는 장인(마스터)들이다. 핀란드의 페르티 세이몰라·안티 니에미넨·위르키 니에미넨·요우코 니에미넨, 헝가리의 가보 스좀바시·졸탄 타카츠, 폴란드의 마주 리자드·푸르삭 왈드마 등은 미술학교에서 이들에게 학생들을 보내 실습을 시킬 만큼 자기 공방과 제품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9월 28일부터 30일까지 일반인들과 함께 워크숍을 연 이들은 오는 13일까지 열리는 전시회에 제자들과 함께 자신들 작품을 선보인다.

안씨는 "전통적인 대장간 기법을 철저하게 고증해 익히고 나서, 거기에 자기 아이디어를 더해 현대적인 새 예술품으로 만들어내는 그들의 장인정신이 부러웠다"고 말했다.

또 "그 기법을 전수하는 과정이 가르치고 배운다는 당위가 아니라 놀면서 자기 개성을 발휘하는 쪽으로 자유롭게 흘러가는 점이 우리가 받아들일 태도가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02-379-3994.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칭 칭 챙 챙." "뚝딱 뚝딱 쨍쨍."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평창동에 맑은 쇳소리가 울려퍼졌다. 야외조각들이 서 있던 토탈미술관 앞뜰이 한 순간에 대장간으로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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