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주 특구에 지나친 의문 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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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언론은 사회의 중요한 이슈나 의제를 선정하고, 그것들을 집중적으로 탐구·분석해 이해도를 높이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것을 '의제 설정(agenda-setting)기능'이라고 한다. 의제 설정을 근간으로 해서 언론은 사회의 중요한 문제에 관한 여론을 주도하게 된다. 언론의 '주도적인 여론 형성 기능'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난주 중앙일보는 몇 가지 중요 이슈와 의제들을 설정했다. 23일부터 28일까지 지속적으로 다룬 '북한의 신의주 경제특구 지정' 사안, 24일부터 28일까지 이어진 '대선 후보 릴레이 인터뷰' 보도가 대표적이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폭로된 한화의 대한생명 인수 로비 의혹과 국정원의 정치 개입 의혹, 그리고 현대를 통한 북한에의 자금 지원 의혹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먼저, 북한의 신의주 경제특구와 관련해선 그 배경과 구체적인 진행 과정, 예상되는 어려움, 북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 및 그에 따른 의의 등에 대해 상세하게 보도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왔다. 그러나 기사의 부분 부분마다 과연 특구 지정이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음은 아쉬운 점이다. 특히 '북한의 신의주 특구 실험'(23일자 2면)과 '신의주 특구의 거대한 도박?'(25일자 2면) 등의 사설에서 신의주 특구화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비관적인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둘째, '대선후보 릴레이 인터뷰'는 12월에 있을 대통령선거 입후보자들의 정책과 공약을 분석하고 평가하면서 이들의 차이점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정책 중심의 대통령선거 분위기를 확립하고자 하는 중앙일보의 의지를 드러낸 기획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인터뷰 대상자로서 이회창·노무현·정몽준·권영길 씨 등을 선정한 원칙에 있다. 이회창·노무현·권영길 씨는 각각 정당의 입후보자로서 공식으로 선출된 사람들이지만, 정몽준씨는 아직 특정 정당의 입후보자가 아닌 잠재적 입후보자일 따름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주요 입후보자로 부각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선정했다면, 그것은 큰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여타 잠재 후보자들이 자신들을 독자들에게 알릴 기회를 봉쇄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대선 '후보군'에서 배제되게 만든다. 鄭후보의 경우 특정 정당의 후보가 되기 전에는, 세 차례에 걸쳐 게재됐던 '집중탐구 정몽준'(18·20·23일자) 정도의 기획기사면 충분할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 국회의 국정감사 과정 중에 제기된 각종 의혹이 정치인들의 입을 빌려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데, 이는 우리 언론의 '사실파악 능력 부재'와 '부적절한 의제 설정'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언론은 각종 게이트와 의혹 사건들에 대한 보도에서 나타났듯이, 사실이 규명되지 않은 의혹만 어지럽게 제기했을 뿐 그것들에 대한 적확한 이해와 명쾌한 평가를 내리지 못했다.

이번에 제기된 의혹들은 그 중대성이나 영향력에 있어 여느 사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관련 사항들이 사실대로 드러나고 책임의 소재가 밝혀질 것이라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폭로 사항의 중계 보도가 아닌, 사실 파악을 위한 탐사 보도가 요구되는 이유다.

이렇듯 우리 언론은 특정 이슈나 의제를 선정하는 데 있어 세심히 주의해야 한다. 적절하지 못한 의제 설정은 국가나 사회에 극도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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