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 사회도 경쟁 바람] '고위직 공모제' 내부 변화 불 지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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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사회에 경쟁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정부가 지난해 1월 공무원 간 경쟁을 촉발시키기 위해 도입한 부처 간 인사교류제와 고위직 공모제의 약발이 서서히 먹히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3급 이상 고위공무원을 대상으로 도입하기로 한 '고위공무원단' 제도도 이런 변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공직사회의 '철밥통' 관행을 깨기 위해선 아직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 여전히 민간 전문가의 영입이 부진하다. 그나마 공무원 간의 경쟁조차 국장급 이상 고위직에 한정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공직사회에도 개방과 경쟁의 시장원리를 제대로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 철밥통 공직사회=김대중(DJ)정부 초 정부는 두 가지 시도를 했다. 하나는 기획예산위원회에 정부개혁실을 만들면서 실장에서 팀장까지 9명의 간부 전원을 민간 전문가로 충원했다. 이들에겐 공기업 수술을 맡겼다. 밥그릇이 줄게 된 공직사회는 즉각 반발했다. 정치권까지 동원해 정부개혁실을 압박했다. 결국 정부개혁실이 주도한 공기업 수술은 용두사미가 됐다. 정부개혁실의 민간 전문가 가운데 기획예산처에 남은 사람이 한 명도 없음은 물론이다.

다른 하나는 3급 이상 고위직에 민간 전문가를 영입하는 '개방형 임용제'의 도입이었다. 당초 기획예산위원회와 청와대는 참모에 해당하는 차관보급은 전원 개방형으로 돌리려고 했다. 그러나 공직사회는 다시 저항했다. 우여곡절 끝에 전체의 20%만 개방형으로 뽑기로 절충이 됐다. 그나마 20%를 무조건 민간 전문가로 충원하는 것도 아니고 자리가 빌 때마다 '충원할 수 있다'로 후퇴했다. 그 결과 DJ정부를 통틀어 개방형 직위에 민간 전문가가 영입된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참여정부 들어서도 이 비율은 37%에 그치고 있다.

◆ 촉발된 내부 경쟁=민간과 경쟁시키려는 계획이 벽에 부닥치자 참여정부는 공무원 간 경쟁을 부추기는 쪽으로 인사정책의 방향을 틀었다. 지난해 도입한 부처 간 인사교류제와 고위직 공모제가 대표적인 예다. 인사교류제는 부처끼리 핵심 국장을 맞바꿔 근무토록 한 것으로 지난해 초 22개 국장급 자리를 대상으로 처음 도입했다. 직위 공모제는 각 부처의 직위에 내부승진이 아니라 전체 공무원 대상의 공개모집으로 적임자를 뽑는 제도다. DJ정부 때 5개 부처 13개 직위를 대상으로 했다가 현 정부가 29개 부처 234개 직위로 확대했다. 특히 지난해 1월엔 교육부 대학지원국장 등 중앙부처 핵심 국장 10개 자리를 공개모집으로 선발했다.

공직사회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일부 부처는 교류대상자를 고르는 데 진땀을 빼기도 했다. 그러나 시행 1년이 되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다른 부처에서 온 국장들이 뜻밖에 '선전'하면서 내부 조직에 신선한 자극제가 됐기 때문이다. 경쟁부처에 근무한 국장 중 상당수는 승진 1순위로 꼽히기도 했다. 일부 부처에선 올 초 2차 교류대상을 선발하는데 지원자가 몰려 내부 경쟁을 거치기도 했다.

고위공무원단 제도도 변화에 촉매제가 되고 있다. 3급 이상 고위직은 부처와 관계없이 하나의 풀에 넣고 이 가운데 50%는 각 부처 장관이 뽑을 수 있도록 하고, 30%는 공무원 가운데서 공모하며, 나머지 20%는 민간 전문가로 충원한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따라서 3급 이상 고위직은 다른 부처에서 근무해본 사람이 발령받는 데 유리할 수밖에 없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국장직 대부분을 내부공모제를 통해 뽑기로 한 것도 공직사회의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 민간과 경쟁 확대해야=공직사회 내부 경쟁에 그쳐서는 안 되고 민간과도 본격적인 경쟁을 하도록 개방형 임용제를 더 확대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인사교류제나 직위공모제도 과장급 이하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다. 과장급 이하 하위직은 단계적으로 민간 채용을 늘려 궁극적으론 공무원 임용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DJ정부에서 개방형 임용제를 도입한 김태동(현 금통위원) 전 정책기획수석은 "공무원은 비록 부처가 달라도 비슷한 조직문화와 사고방식에 젖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양한 시각을 가지기 어렵다"며 "민간과 경쟁하도록 하지 않고선 정부 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경민.허귀식.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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