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과 '의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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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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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북한 선수단을 이끌고 김해공항에 도착한 박명철(68)국가체육지도위원장 겸 올림픽위원장은 북한 체육계의 수장답게 여유가 있었다. 취재진의 질문공세 앞에서도 시종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의 한국 방문은 1990년 김유순(96년 사망)전 위원장이 남북통일 축구대회 때 서울을 찾은 데 이어 북한의 체육장관급으로는 두번째다.

박위원장은 북한 최고의 체육대학인 평양체육대학을 졸업한 뒤 국가체육지도위원회 국장과 국가체육지도위 부위원장·북한올림픽위원회 위원·조선축구협회 부위원장 등을 거치며 체육계의 실세로 떠오른 행정관료다. 1992년 북한의 최고 상훈인 '김일성 훈장'을 받았으며, 그해 국가체육위원장이 됐다.

박위원장이 전문 체육인으로는 드물게 고위 간부로 승진하는 데에는 그의 부친과 김일성 주석 간의 특별한 인연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그의 부친인 박정호는 해방 후 우연히 김주석의 사택과 이웃해 살아 집안끼리 교류하면서 첫 인연이 맺어졌다. 이후 박정호가 북조선공산당의 재정부 고위 간부로 활동하면서 김주석과 친숙한 관계가 됐다.

박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는 '의형제'라고 불릴 정도로 각별한 사이로 전해진다. 두 사람은 1957년 박정호가 사망한 뒤 김주석이 박명철 등 4남매를 여러차례 불러 만나면서 가까워졌다. 한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때 김주석은 "내가 친아버지가 되어 너희를 돌봐주겠다"고 말하고 김위원장에게 '친형제처럼 지내라'고 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평범한 체육인이었던 박위원장은 거침없이 승진가도를 질주하기 시작해 70년대 이후에는 북한 체육계의 실세로 부상했다.

그의 집안은 스포츠 집안으로도 유명하다. 부인 김영숙은 농구 대표선수 출신으로 60년대 일본 프로레슬링계를 풍미했던 역도산(한국명 김신락)의 외동딸이다. 넷째 딸 박혜정(29·압록강체육선수단)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체육대학에서 역도를 전공, 2000년 북한의 여성 역도 감독 1호가 됐다. 같은해 역시 체육분야의 간부와 결혼한 박혜정은 이번에 아버지와 함께 부산 아시안게임에 참가했다.

역도선수 출신의 한 탈북자는 "박감독은 엄격하면서도 정이 깊은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의 금메달 후보로 거론되는 이성희(53kg급)·최은심(48kg급) 등을 발굴, 육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부산=정창현 기자

jch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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