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빵 안녕 … 이젠 맛도 희망도 빵빵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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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우리 밀로 만든 맛있는 쿠키입니다. 정부가 품질을 보증한답니다.”

28일 오후 서울 목동의 ‘행복한 세상’ 백화점 1층.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던 손님들이 쿠키 판매대 앞에 멈춰 섰다. 한 주부가 아이와 자신의 입에 한 조각씩을 넣더니 “와, 맛있네”를 연발했다. 쿠키를 시식한 20대 여성이 5000원짜리 한 봉지를 냉큼 집어 들자 남자친구가 웃으며 계산을 한다.

‘빵과 사람들’ 공동대표 김종순(가운데)·김둘례(맨 오른쪽)씨와 직원들이 빵을 만들다 사진 촬영을 하면서 환하게 웃고 있다. 이곳에서 만든 빵은 서울 목동의 행복한세상 백화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안성식 기자]

판매대의 김종순(38·여·경기도 부천시)씨는 몰래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자신들이 만든 과자가 서울의 백화점에서 팔린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김씨는 자활공동체 ‘빵과 사람들’의 공동 대표다. 지난 10년의 어려움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외환위기 때 스펀지 몰딩 가내수공업을 하던 남편(45)의 사업 실패, 이어진 취업과 실직의 반복. 아이 분유 살 돈이 없을 정도로 살림은 쪼들렸다. 호프집 주방보조, 김밥집 종업원, 화장품 판매업체 경리사원 등 닥치는 대로 했지만 살림은 통 나아지지 않았다. 2008년 기술을 배우기로 결심하고 부천 소사지역 자활지원센터를 찾았다. 제빵기술과의 첫 만남이었다.

‘빵과 사람들’은 김씨와 같은 30~40대 저소득층 여성 가장 세 명이 운영한다. 공동 대표인 김둘례(46)씨는 5년간 남편의 백혈병 치료비를 대느라 4000만원을 빚졌고 집까지 팔았다. 하지만 남편은 2004년 세상을 떠났다. 세 자녀와 함께 살 곳이 없어 지금은 한부모가정 공동시설인 모자원에 기거하고 있다. ‘빵과 사람들’의 운영은 녹록지 않았다. 판로가 문제였다. 쿠키를 팔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간신히 부천시청·원미구청·소사구청·부천적십자·세종병원 등에 쿠키를 공급하게 돼 월평균 700만~8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하지만 재료비와 인건비 등을 빼면 남는 건 100만원도 채 안 됐다. ‘당일 생산, 당일 판매’ 원칙을 고수하면서 품질은 자신 있었지만 더 이상 판로를 늘리기 어려웠다. 그러던 차에 보건복지부가 도우미로 나섰다. 자활공동체 생산품 중 우수한 제품을 골라 ‘굿스굿스’라는 통합 브랜드를 만든 것이다. 제품 설계도 다시 했다. 우리 밀과 유기농 설탕 등 친환경 재료로 바꾸고 디자인과 포장도 개선했다. 그러자 엄두도 못 냈던 백화점 납품길까지 트였다. 행복한세상 백화점에 굿스굿스 전문매장인 ‘엔스토리’가 개점한 것이다. 엔스토리에서는 쿠키 외에 제주도 야생초차, 진안의 홍삼액, 양천구의 한지공예품 등 우수 자활공동체 제품 다섯 가지가 판매된다. 전국 제조 분야 자활공동체 530여 곳의 제품(1900여 개) 중 백화점 매장에 진열되기는 이들 제품이 처음이다. 이 백화점의 손창록 대표는 입점 수수료를 대폭 낮춰 줬다.

“우리 쿠키의 품질이 세상에서 확인받은 거죠. 쿠키와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를 차릴 날이 멀지 않았어요. 조금만 더 고생하면 우리 가족이 가난에서 벗어날 날이 올 것 같아요.” 김둘례씨는 세 자녀와 함께할 작은 보금자리를, 김종순씨는 남편과 함께 오순도순 웃으며 지금을 회상할 여유가 생길 때를 꿈꾸고 있다.

글=김정수 기자, 김다솔(성균관대 신문방송 4)· 박진탁(한동대 언론정보학부 졸업) 인턴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굿스굿스(Good’s Goods)=보건복지부가 품질이 우수한 자활공동체 제품에 붙인 통합 브랜드. 좋은 사람들이 만든 좋은 상품이란 뜻으로 20여 개 제품이 이 브랜드를 사용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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