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최완규 교수 방북기:주민 대부분 特區소식 감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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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19일 북한이 신의주를 특별행정구로 지정했다고 발표한 이후 남측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최완규(崔完圭·경남대 북한대학원 부원장)교수가 지난 24∼26일 현지를 방문했다. 崔교수는 학술진흥재단의 '신의주 지역 연구 프로젝트' 를 맡아 최근 수년간 연구해왔다.

편집자

"우리 신의주만 잘 살겠다고 특구를 만들겠습니까. 공화국 전체가 다 잘 살려고 하는 조치입네다."

지난 24일 중국 단둥(丹東)에서 북·중 국경을 연결하는 '조·중 친선다리'를 넘어 신의주로 들어가면서 만난 한 북한 관리는 특별행정구 지정에 대한 기대를 이렇게 나타냈다.

북측 세관원에게 여권번호와 이름 등을 적은 입국서류를 제출하니 직원이 짐검사를 시작했다. 가방을 열어 꼼꼼히 조사를 벌였다.

중국으로 통하는 관문 도시답게 신의주 해관(세관)은 사람과 물자로 일렁였다.

입국을 기다리는 사람만도 1백명이 넘었다. 평안북도는 물론 황해북도와 함경도 등 북한 전역에서 온 차량 번호판이 눈에 띄었다. 국경지대인데도 평양 넘버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도 특이했다.

외길인 우의다리는 한 시간 정도마다 교대로 북·중 간을 일방통행으로 운행하고 있었다. 오전·오후 합치면 북한과 중국 측이 각각 2∼3회 정도씩 운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2시간 동안 지켜보는 사이 석탄과 곡물 등을 가득 실은 큰 트럭 20여대가 드나들었다. 특히 중국제 텔레비전 수상기를 1백여대씩 실은 중국 트럭 3대도 월경을 기다렸다.

그렇지만 국경 언저리의 이런 부산한 분위기와 달리 신의주의 일반 주민들은 아직 특구에 대해 알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일부에서는 주민들을 이주시키기 위한 움직임이 벌써 시작됐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아무런 낌새가 드러나지 않았다.

월경 허가증을 단 중국 쪽 소형버스를 이용해 왕복 4차선은 됨직한 큰 길을 질주해 숙소인 압록강여관에 짐을 풀었다. 호텔 로비에서 받아본 23일자 북한 노동신문은 신의주 특구를 선포한 최고인민회의 정령(政令)을 아주 작게 다뤘다. 1면 중간에 제목 한 줄에 세 문장짜리 기사였다.

북한 당국이 내부적으로는 신의주 특구 문제를 그리 크게 부각시키지 않으려 하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신의주시 관리들도 특구 지정에 대해 질문하면 "보도된 그대로만 이해하시라요"라며 더 이상 구체적인 말을 하지 않았다.

압록강여관에서의 이틀밤은 신의주의 열악한 인프라를 몸으로 느낄 수 있게 했다.

이미 쌀쌀해진 북부지방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온수는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수돗물은 시간제로 나왔고 객실의 전등은 이따금 껌벅거렸다. 이웃 아파트에는 곳곳에 불이 켜져 있었지만 도로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평양에서 출발해 단둥을 거쳐 중국 내륙으로 가는 국제열차가 지나가는 신의주청년역의 사정은 더 나빴다. 나무로 만든 침목은 상당 부분 망가진 채 보수가 안돼 있었고, 교체한 콘크리트 침목도 부서져 내부의 철근이 뻘겋게 녹슨 채 알몸을 드러냈다. 그런데도 화물을 실은 열차와 객차의 운행은 빈번했다.

도로는 비교적 넓고 반듯하게 만들어져 있었지만 여기저기 포장이 망가져 차가 덜컹거렸다.

북측 안내원을 졸라 신의주시 김일성혁명사적관으로 갔다. 이곳에서 1989년 5월 김정일이 내려보냈다는 남신의주시 건설계획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91년 2월 9일자 평북일보는 '남신의주시를 멋쟁이로 일떠 세우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교시를 소개하고 있었다. 金위원장은 이미 당시부터 신의주시를 현대적인 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한 구상을 갖고 있었음을 확인했다.

金위원장은 "신의주시는 소층 전문도시로 만들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4∼5층 정도의 건물을 위주로 짓고 8층 이상의 건물은 절대 짓지 말라"는 도시 미관을 위한 고도제한 가이드 라인까지 세운 것이다.

이곳에는 남신의주시 개발을 위해 만들어 놓은 모형도도 마련돼 있었다.

압록강여관 1층에서는 관광객을 위한 매대가 눈에 띄었다. 술과 명태, 의류와 고무신·구두, 그리고 신의주화장품 공장에서 만든 '밤크림(나이트크림)'도 전시됐다.

강계술은 2백61원, 신덕소주는 91원이었고 목욕타월은 3백30원, 북어 10마리 1천5백원, 남성 내의는 6백∼1천2백원으로 가격표가 북한 원화로 적혀 있었다. 7월 1일 경제관리 개선조치 이후 달러당 2.15원 정도 하던 환율도 크게 현실화돼 달러당 1백50원으로 바꿔줬다.

사흘 동안의 체류 중 정해진 일정외의 외출이나 개별 행동은 철저히 통제됐다.

지난 3월 단둥을 거쳐 들렀던 신의주 상황보다 통제가 심해진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거리에는 출퇴근하는 군인들은 물론 군용차량의 이동도 부쩍 늘어났다고 한다. 주민들의 옷차림은 다소 칙칙했지만 표정은 밝았다.

호텔이 위치한 북신의주(특구 예정지)에서 신시가지로 개발된 남신의주까지는 14㎞ 남짓. 주민들은 아직 통제없이 걸어서 오갔다. 두 지역 사이에는 논이 있고 폭 5m 정도의 하천이 조성돼 있다.

북한 측이 운하라고 얘기하는 이 시설물이 앞으로 특구와 다른 지역을 나누는 경계가 될 예정이라고 한다.

특구 장관으로 임명된 양빈(楊斌)은 신의주 주민들에 대한 대대적인 이주계획을 밝혔지만 문제점도 적지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퉁제(중국제를 신의주 주민들은 이렇게 부른다)' 가 판치는 상황이 된 데다 '비밀요정'까지 있다는 소문까지 들리는 신의주의 주민들은 누구보다 외부 소식에 민감한 편이었다. 자본주의에 노출될대로 노출된 이곳 주민들의 이주가 과연 필요할까, 그리고 이들이 다른 지역으로 갔을 때의 후유증은 없을까. '신의주 실험'의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쉽게 점치기 어려웠다..

정리=이영종 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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