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실린 발견 플레밍 과학계의 '홈런 한 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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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2면

'젖은 손∼이 애처로워 살며시 잡아본 순간'으로 시작하는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른 가수는 하수영이다. 그는 이 곡 외엔 이렇다할 히트곡이 없지만, 이 한 곡으로 가요계에 불멸의 가수가 되었다. 미국의 여가수 데비 분은 1977년 'You light up my life'라는 발라드 곡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으나, 그의 후속곡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국에선 이런 가수를 'one-hit wonders'라고 부른다. 단 하나의 히트곡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든 천재라는 의미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반짝 가수'쯤일 텐데,미국에선 이 단어가 꼭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소설『바람과 함께 사라지다』하나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마거릿 미첼이나『앵무새 죽이기』 하나로 세상을 뒤흔든 소설가 넬 하퍼 리에게도 이 수식어는 따른다. 우리로 따지면,『혼불』을 쓰는 데 평생을 바친 최명희 선생이나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 선생도 이에 해당될 것이다.

과학계에도 '안타 한 방'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과학자'들이 있다.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이 대표적인 사람이다. 런던의 세인트메리 병원에서 연구하던 플레밍은 1928년 어느 날 어린이들에게 흔하던 부스럼의 원인인 포도 모양의 병균을 배양하다 우연히 한 개의 배양접시에서 병균 무리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배양접시에 푸른곰팡이가 자리잡고 있어 병균이 자라지 못한 결과임을 깨달은 그는 문제의 곰팡이로 실험을 거듭했다. 그 결과 페니실륨속인 이 곰팡이가 생산하는 물질이 여러 종류의 세균에 대해 항균작용을 나타낸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물질을 페니실린이라 이름붙였다. 그러나 플레밍은 페니실린의 분리 정제에 곤란을 겪어, 1929년 자신의 연구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고는 더 이상 연구를 진행하지 않았다.

페니실린이 폐렴을 비롯한 세균성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적의 항생제'가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 후 다른 과학자들의 노력에 의해서였다. 옥스퍼드대학의 병리학자 플로리와 체인이 1년여의 노력 끝에 페니실린 정제에 성공하고 대량 생산의 길을 연 덕분에, 플레밍은 그들과 함께 194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됐다. 그는 '페니실린 발명'이라는 단 한 방의 홈런을 날린 것으로 과학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이다.

스위스의 발명가 조르즈 드 메스트랄은 '벨크로'를 발명해 일약 스타가 되었다. 거친 면과 부드러운 면이 서로 짝이 되어 접착되는 일명 '찍찍이', 벨크로 테이프를 개발한 그는 이 발명품 하나로 세계적인 기업 벨크로사의 주인이 됐다.

그들은 과학계의 '반짝 스타'가 되었지만, 그들이 남긴 빛은 아직도 우리 곁에 있다. 평생 하나의 발견을 위해 몰두하고 난 후 소진한 과학자들. 가장 빛나는 별들이야말로 가장 장렬하게 제 몸을 태운,그래서 가장 빠르게 소멸하는 별들이 아니던가!

jsjeong@complex.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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