逆귀성의 경제학 지방경기 재미 덜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올 추석에도 많은 사람이 고향에 다녀왔다. 귀성은 단지 그리운 가족과 친지를 만나고 차례를 지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보면 부의 재분배 기능을 한다.

자동차로 이동하면서 지방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다. 고향 부근 재래시장에서 사과·배 등 과일과 고기 몇 근이라도 산다.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나 소주잔도 기울인다. 성묘 가는 길에 아이들은 구멍가게에서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사먹는다. 따지고 보면 이 모두가 그 지방의 소득이 된다. 부모님과 조카 등 친지에게 쥐어준 용돈도 역시 고향에 뿌려진다.

비록 며칠이지만 고향에 다녀오는 서울과 수도권 사람들의 이같은 소비 행위가 지방 경제에는 보탬이 된다. 재화와 사람이 계속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가다가 모처럼 작으나마 지방으로 떨어지는 반짝 효과를 낸다. 귀성의 경제학은 이렇게 지방 경제 기여도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귀성 길에 시달리는 자식들이 안쓰럽다며 서울로 올라오는 부모가 늘고 있다. 이른바 '역귀성'이다.

정확한 통계는 잡히지 않지만 추석과 설 하루 이틀 전 서울역과 반포 고속버스 터미널에는 보따리를 몇 개씩 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많이 눈에 띈다. 참기름·깨 등 농산물부터 지방 특산물에 이르기까지 바리바리 싸 들었다.

올해도 추석 전날 지방에서 서울역과 청량리·영등포·수원 등 수도권 역으로 올라온 승객이 평소 주말보다 40% 많은 14만여명이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명절 직전 상경 열차는 좌석이 절반만 차는 '반쪽 수송'이었다. 2000년 무렵부터 빈 좌석이 줄어들더니만 올해는 임시 열차까지 좌석이 매진되고 입석표도 꽤 팔렸다. 고속도로에서도 올 추석 전 일주일 동안 서울과 수도권 진입 차량이 평소보다 10% 정도 많았다. 도로공사는 이들 중 상당수를 역귀성 차량으로 본다.

역귀성 현상이 두드러짐은 지방 경제로 보면 속이 상하는 일이다. 그나마 며칠 반짝 뿌려지던 서울 돈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역귀성이 없더라도 어차피 시골을 찾는 발길은 줄어들게 돼 있다. 소를 팔아 아들의 서울 유학 비용을 댔던 부모의 허리는 휜 지 오래다. 아직까지는 부모가 시골집을 지키고 있지만, 그분들이 돌아가면 자식들의 발길도 뜸해질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이 고향인 젊은 세대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1960년 총인구의 56.9%였던 농가 인구는 2000년 8.6%로 줄었다. 그나마 5명 중 한 명꼴(21.7%)로 65세 이상 노인이다. 고향은 이미 너무 늙어 있다. 고향 가는 길이 힘들더라도 지방 경제를 위해 내년 설에는 부모님 계신 고향으로 달려가는 게 어떨까.

jaya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