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MCA야구단>짚신 신고 빨래방망이… 공포의 폭소球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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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송강호(35)의 카리스마와 김혜수(32)의 건강미가 마주치니 주변이 가득찬 느낌이다. 영화계 밥그릇을 따지면 고참격인 김혜수는 말끝마다 오빠를 빠뜨리지 않았다. 배우로서의 프로의식, 촬영장에서의 성실성 등에서 한수 배웠다는 것이다.

과분한 칭찬에 송강호가 '하하하' 고성을 터뜨리다가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면서 "열정이야 혜수를 따를 수 없지"라고 답례했다. 남녀 배우 가운데 파워면에선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그들이 다음달 3일 개봉하는 'YMCA 야구단'(감독 김현석)에서 합을 겨뤘다. 1905년 창단한 한국 최초의 야구단인 황성YMCA 야구단에서 각기 4번 타자 이호창과 감독 민정림으로 나온다.

송강호와 김혜수는 'YMCA 야구단'에서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과거제도가 없어지자 암행어사의 꿈을 버리고 조선 최고의 야구선수를 향해 매진하는 호창의 코믹한 연기는 '넘버3''반칙왕'의 송강호가 확대된 형태고, 어려서 서양 문물을 접한 신여성인 정림의 당당한 자태는 숱한 드라마·영화에서 확인됐던 김혜수의 자신감이 증폭된 모양새다.

하지만 영화 속의 그들은 다소 복합적이다. 답답한 현실을 뚫는 출구로 야구를 택한 호창은 선비와 야구선수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풍스런 드레스 차림의 정림은 여성의 권익을 외치는 투사보다 시원한 타구로 조선의 억눌린 민초를 달래주는 넉넉한 마음씨를 보여준다.

"우리네 조상의 숨결이 은근하게 배어나오는 영화입니다. 드러내기보다 감추려고 애를 썼습니다. 다른 영화에 비해 대사도 적은 편이죠. 그럼에도 1백년 전의 상황을 충실하게 드러내기 위해 배우·스태프 전원이 머리를 맞댔습니다."(송강호)

"정림의 성격은 사실 시나리오에 이미 규정됐습니다. 감정선을 살리기 어려운 인물이죠. 당찬 여성이란 제 이미지가 반복되는 감도 있구요. 그러나 진보·활달 일변도의 신여성이 아닌 많은 여운을 지닌 캐릭터로 비춰지도록 노력했습니다."(김혜수)

'YMCA 야구단'은 코미디다. 지난해부터 충무로를 장악하고 있는 코미디 열풍의 바통을 이어받고 있다. 한국영화에서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구한말 시대를 배경으로 짚신 신고 빨래방망이 휘두르던 당시의 야구 경기를 재연하고, 또 그 안에 훈훈한 미소를 녹여놓는 등 새로운 영화에 도전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예컨대 선비·유학생·상민 등 다양한 출신으로 구성된 선수단이 "잘하세, 잘하세"를 외치며 파이팅을 다지는 장면에선 마음이 따뜻해지고, 선비 호창이 정림에게 "내 마음을 훔쳐간 도둑이여"라며 연서를 쓰는 장면에선 폭소가 터진다. 장타를 날리는 호창이 일본군 야구팀과 맞서며 "휘어진 공(요즘의 커브)을 치는 것은 정정당당하지 못하다"며 고집을 피우는 모습도 정겹다.

"요즘의 한국 코미디는 주인공의 돌출된 행동이나 TV 개그 수준의 말장난으로 일관합니다. 반면 이 영화엔 시대적 부담감이 담겨 있습니다. 1백년 전의 과거, 그것을 사실적으로 재연하되 동시에 영화적 팬터지를 균형있게 덧붙이는 게 어려웠습니다. 어떤 드라마보다도 힘겨웠던 영화였어요."(송강호)

웃음에 대해 얘기가 나오니 김혜수가 빠질 수 없다. 획기적으로 새로운 웃음은 아니지만 차별성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래도 호창과 정림에서 역사의 고민이 그다지 감지되지 않는다고 물었다. 상황 설정과 캐릭터 묘사는 재미있지만 그 재미에 묻혀 구한말의 혼란스런 사회와 각 개인의 함수가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은 것 같기 때문. 주인공도 너무 순박해 보인다고 꼬집었다. 그들이 이내 손사래를 쳤다.

▶송강호=시대극 하면 사람들은 정치극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정치로만 볼 수 없습니다. 단순하고 소박한 것에서 과거를 더 친숙하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일제의 슬픈 역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직설화법보다 유머를 섞은 간접화법이 더 큰 파장을 일으키고, 그게 또 예술의 본질이라고 봅니다.

▶김혜수=사실 역사적 소명의식으로 똘똘 뭉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물론 유관순 같은 열사도 있겠으나 대다수는 열정은 있되 행동까진 이르지 못하죠. 그런 면에서 호창은 분명 있을 법한 조선의 선비입니다. 또 정림은 윤심덕·최승희까진 이르지 못해도 당시 신여성 중의 한명이 아닐까요.

'확신범'의 부창부수(夫唱婦隨)를 듣는 것 같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걸까. "잘된 연극을 보면 무대 뒤가 상상되듯 1백년 전이 보이도록 연기했다"는 송강호와 "데뷔 20여년의 배우지만 어릴 적 스타가 된 까닭인지 이제 연기에 철이 드는 것 같다"는 김혜수의 말도 밉지 않았다.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며칠 전 추석처럼 시대의 고통을 딛고 희망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얘기로 봐달라는 게 그들의 주문이다.

박정호 기자

jhlogos@joongang.co.kr

'YMCA 야구단'은 경쾌하다. 일제 강점기 직전의 암울했던 시대상과 달리 영화는 꽤나 발랄하다. "1백년 전에 야구를 즐겼던 사람을 그리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는 일단 성공적으로 관철된 것으로 보인다. 감독은 "그러나 시대가 시대인 만큼 역사를 배제하기 어려웠다. 한국 근대사라는 묵직한 배경과 그 안에서 좌절하지 않고 살아갔던 사람들 사이에서 수위를 조절하기가 어려웠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YMCA 야구단'은 웃음 쪽에 무게를 실은 것으로 보인다. 시대극에서 연상되는 선 굵은 주제 의식이 그다지 도드라지지 않는다.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에 처한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는 충정이나 고뇌는 이 영화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

작품 곳곳에 숨겨 놓은 코믹한 대사, 야구를 중심으로 뭉친 각양각색의 캐릭터, 스포츠 영화의 장점인 속도감 있는 화면 등 시종일관 유쾌한 화면이 펼쳐진다. 때론 명랑 스포츠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다. 반면 격변의 시대 속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선비의 위상, 야구 선수단간의 신분·계층 갈등, 친일파 응징 문제 등을 고루 삽입해 영화 자체가 경박한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을 예방했다. 주연 배우와 조연의 호흡도 안정적이다. 기획 영화로서의 기본기를 갖춘 셈이다.

하지만 고급 코미디 영화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인 페이소스(비애)는 부족해 보인다. 더러 마음을 울리는 부분이 있으나 벌여놓은 갈등이 손쉽게 마무리되는 바람에 가슴을 뻐근하게 채우는 감동은 덜한 편이다. 그래도 억지 웃음이 판치는 요즘의 코미디와 달리 풋풋한 웃음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반갑게 다가온다. '사랑하기 좋은 날''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각본을 쓰고 김기덕 감독의 '섬'에서 조감독을 했던 김현석 감독의 데뷔작이다. 전체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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