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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천외 신의주 실험]中. 성패의 변수-미국|"北 핵·미사일 문제는 별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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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현기증나는 대내외 조치를 지켜보는 시선들이 이제는 북·미 관계에 쏠리고 있다. 북·미 대화만이 여전히 미답(未踏)으로 남은 데다 일본과 국제금융기구의 대북 경제원조를 사실상 미국이 움켜쥐고 있기 때문이다.대 이라크 전쟁 분위기 속에서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라는 문제도 무겁게 버티고 있다.

신의주특구에 대해 미국 조야는 일단 매우 재미있고 긍정적인 사태발전으로 보고 있다. 미 정부 고위관리는 한국 정부 관계자에게 "매우 흥미롭다"고 얘기했다. 한반도 전문가인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북한이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고 있다. 상당히 긍정적인 변화"라고 논평했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미대사는 "북한이 네덜란드 국적의 양빈(楊斌)을 특구 초대장관에 임명한 것은 남한이 네덜란드 출신 거스 히딩크 감독을 채용했던 것에 대한 메아리 같다"는 조크를 던졌다. 그는 "나진·선봉 특구는 너무 외져 실패했는데 신의주는 지리적 여건이 좋아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북한의 진의나 개방의 장래에 대해선 신중한 시각이 우세하다. 익명의 미 정부관리는 "과거에도 나진·선봉 특구를 한다고 했는데 별볼일없었다. 남북 정상회담 때도 요란했지만 그 후 오랜 기간 별 진전이 없었다. 서해도발도 있었다. 이번에도 모양은 근사하지만 실체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빅터 차 교수는 金위원장이 화려한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개방 속도에서는 지극히 신중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金위원장은 권력 장악과 개방의 균형을 맞출 것이다. 개방이 지나치게 빠르면 북한 국민이 金씨 정권의 개인숭배가 기만이었다는 것을 빨리 알아채고 저항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레그 전 대사는 '인민의 저항'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金위원장은 아버지 시대에 저질러진 일본인 납치를 과감히 인정했다.그것은 그가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는 건설적인 징표"라고 진단했다.

미 공화당 정권은 경제·외교 문제와 안보 현안을 분리하는 데 매우 날이 서 있다. 북한이 일본과 회담하고 개혁·개방조치를 취한다 해도 핵·미사일·재래식 전력이라는 3대 안보현안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미국은 변화에 관한 북한의 진의를 알려면 대량살상무기 문제에 대한 북한의 태도를 봐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25일(한국시간) 조속한 시일 내 특사를 북한에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다음달 중에는 김정일 위원장의 개방 실험이 드디어 미국이라는 '성패의 변수'와 부닥치게 될 것 같다.

부시 대통령의 결정은 급격한 한반도 기류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화의 진로는 불투명하다. 대량 살상무기에 관해 북한이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한 북한의 개혁·개방에 미국이 선뜻 협력의 손을 내밀 가능성은 작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ji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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