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초등생 피켓 뺏은 교사 ‘인권침해’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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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국가인권위원회가 시위를 하는 초등학생의 피켓을 빼앗은 교사의 행동은 아이들에 대한 인권침해라고 판단해 논란이 일고 있다.

2008년 12월 18일 오전 서울 강동구 한 초등학교 교문 앞. 전날 해임된 최모(27·여) 교사와 학생·전국교직원노동조합원 등 20여 명이 ‘선생님을 빼앗지 말아주세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최 교사의 해임을 철회하라는 주장이었다. 그는 10월 전국적으로 실시된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일부 학생과 체험학습을 다녀왔다 해임됐다. 이날은 최 교사를 대신해 새 담임교사가 첫 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시위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모 교장과 교직원 등이 나왔다. 그리고 “다른 학생들이 등교하는 데 방해가 된다”며 학생들이 들고 있던 피켓 등을 빼앗았다. 이후 최 교사가 교실로 들어가기 위해 학교 중앙현관으로 가자 학교 측은 현관 앞에 교사들을 배치해 최 교사의 출입을 막기도 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인권위는 “해직교사의 출입을 막은 것은 정상적인 수업을 위한 조치로 볼 수 있으나 학생들의 피켓을 빼앗은 행동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29일 밝혔다. 2008년 12월 한 청소년단체 활동가가 진정을 제기한 것에 대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시위가 수업시간 전에 평화적인 방법으로 이뤄진 만큼 헌법과 국제규약인 아동권리협약에 근거해 보장받아야 할 표현의 자유”라고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인권위는 해당 교장에게 재발 방지 교육을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이 같은 인권위 결정을 두고 교육계에선 논란이 일고 있다. 김동석 한국교총 대변인은 “어린 학생들에게 책임이나 규칙보다 권리가 더 우선이라고 가르치는 무책임한 결정”이라며 “교내에서 특정 이념을 가진 단체가 학생들을 선동해 집회를 해도 이들을 방치하라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그는 “경기도교육청이 추진했던 학생인권조례에서도 관련 항목은 사실상 삭제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전교조 관계자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는 나이에 상관없이 보장받아야 한다”며 “학생의 의사표현에 대해 피켓을 빼앗고 찢은 교사의 행동이 오히려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위는 2008년에도 울산의 한 중학교 학생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교내에서 집회를 하자 학교 측이 이를 강제 해산한 것을 두고 인권침해라고 결정한 바 있다.

박수련·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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