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교육 '걱정 半 보람 半'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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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주5일 근무제 도입 등으로 탈(脫)도시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 전원에 터를 잡았지만 뿌리를 채 내리기도 전에 다시 도시로 U턴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준비가 없고 전원생활 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원생활의 실상은 어떤지 한 가족의 24시(時)를 따라가 보자.

#어머니 요양 위해 전원으로

서울에서 의료기기수입·판매업체를 운영 중인 임종진(44)씨가 어머니와 부인, 두 딸과 함께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가곡리 별빛마을에 정착한 것은 지난 1998년 5월.

林씨가 전원행을 하게 된 데는 효심이 크게 작용했다. 지병을 앓는 어머니의 간병과 요양을 위해서 공기 좋고 탁 트인 공간이 필요했다. 두 딸이 취학 전이라 교육문제에 대한 부담도 크지 않았다.부인 최진순(37)씨도 어머님을 위해 흔쾌히 승낙을 했다.

林씨는 전원주택 단지 내 땅 2백여평을 1억2천만원에 분양받아 연면적 49평짜리 목조주택을 평당 3백50만원의 건축비를 들여 지었다.

"전원주택에 4년여간 살면서 가장 큰 보람이라면 무엇보다 어머니의 병세가 호전됐다는 점이죠."

#피곤한 출퇴근,빠듯한 일상

林씨의 하루는 일찍 시작된다. 출·퇴근 길이 만만치 않다. 서울 장안평 직장까지 제 시간에 닿기 위해선 새벽 5시 반에 눈을 떠야 한다. 어머니를 병원 셔틀버스로 모셔드린 뒤 오전 7시가 채 안돼 집을 나선다.

운전을 하지 않는 터라 버스 시간을 제때 맞추는 것이 급선무. 20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서울행 시외버스를 놓치면 문제가 커진다. 그나마 7개월 전 집앞 3백여m 거리에 신규노선이 생겨 아내의 운전에 더 이상 신세를 지지 않아도 된 것이 마음이 편하다. 상봉역에서 지하철로 갈아 타 직장까지 걸리는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고단한 출근길이지만 이젠 익숙해졌다. 퇴근 후 소주 한잔도 부담이 간다. 사업상 만나는 사람과도 대부분 간단한 식사만 한다. 동창모임도 이런저런 이유를 달고 꺼리다 보니 이들로부터 차츰 멀어진다는 느낌이 들지만 오후 8시면 어김없이 집으로 향한다.

#교육 문제가 제일 걱정, 하지만 보람도

오후 9시 반쯤 귀가해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면 텃밭과 정원정리, 집안수리 등 묵은 일감이 林씨를 기다린다.

그동안 묵묵히 따라주던 부인 崔씨가 요즘 고민을 내놓기 시작해 속이 편하지 않다. 큰 딸 경덕(9)이와 작은 딸 희지(7)의 교육문제는 걱정이 아닐 수 없다고 崔씨는 토로했다.

"도시 아이들 같으면 영어학습 등 조기교육에 한창일 텐데 학교와 한 군데 다니는 학원수업이 끝나면 밖에서만 노는 모습을 볼 때답답해지죠."

하지만 남편 林씨의 생각은 단호하다.자연 체험이야말로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믿는다. 최근 큰 딸은 서울의 아파트에 사는 이모 댁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와선 이런 말을 했다.

"천장이 낮아 답답해 죽는 줄 알았어요."작은 딸도 "친구들이 우리 집 정원에서 노는 걸 너무나 부러워해요"라고 자랑한다.

崔씨는 "아이들 그림 일기책이 산과 들판, 꽃과 곤충 등 자연으로 채워져 있는 것은 흐뭇하지만 아이들이 원한다면 도시교육의 기회를 주는 게 부모의 도리"라고 여운을 남겼다.

김용석 기자

caf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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