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매니어들 "우리가 직접 출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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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독자에 의한 독자를 위한 독자의 출판사'가 깃발을 올렸다. 지난 5일 등록한 과학소설자가출판단(이하 과자단)이 주인공이다. 과자단은 과학소설(SF)애호가 20여명이 "읽고 싶은 소설을 스스로 번역, 출간하겠다"는 뜻에서 만든 출판사. 기획·번역·판매는 물론 비용조달까지 자발적 품앗이로 책을 만드는 실험적 형태다.

온라인 SF동호회에서 만난 이들이 외국 책에 관한 정보를 주고 받다가 아예 직접 SF를 출간하기로 한 것은 지난 8월이었다. "국내 출판시장을 감안하면 제대로 된 SF가 나오기 힘들다"는 데 의견을 모은 뒤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출판사를 차리기로 한 것은 아니었다.

현재 모임을 이끌고 있는 미국 오스틴대 유학생 홍인기씨와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정직한씨의 부추김으로 홈페이지(www.cookiesf.bawi.org/wiki)를 마련한 과자단은 곧바로 현실의 벽에 부닥쳤다. 출간 대상이나 번역자 선정은 순조로웠지만 저작권문제라든지, 인쇄비 마련 등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를 해결하려면 출판사로 정식 등록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서 출범한 것이 도서출판 과자단이다. 물론 전담직원도, 전용 사무실도 없는 프로젝트 형태다.

이들은 현재 'SF 바벨피시'('바벨피시'는 귀에 넣으면 우주의 모든 생명의 언어가 이해된다는 상상의 물고기로 영국작가 더글러스 애덤스의 작품에 나옴) 프로젝트란 이름 아래 SF 걸작 단편선 『지노메트리』의 연내 출간을 준비 중이다. 1960년대 이후 작품 중 유전공학과 관련한 명작을 모은 것으로 그레그 이건·브루스 스털링 등의 작품 11편이 담긴다. 정직한씨는 "단편집이므로 공동 번역이 가능하고 맛보기로도 훌륭해 첫 출간도서로 골랐다"면서 "일반 판매는 낙관할 수 없지만 3백부 정도는 매니어들이 소화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번역에 참여한 정소연(서울대 사회복지학과 2년)씨는 "애당초 영리를 목적으로 한 것도 아니니 얼마간의 부담은 취미생활비라 생각하면 된다"고, 유창석(서울대 에너지경제학 박사과정)씨도 "혹시 기존 출판사에서 대리 출간 제의가 오더라도 회원용만큼은 우리가 직접 찍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김성희 기자 jae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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