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총리 유형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역대 국무총리는 대개 '대독(代讀)총리' '의전총리'다. 국정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어렵고, 결정권도 없다.

대통령 대신 각종 행사에 참석해 원고를 읽는 게 총리의 주 업무라는 얘기다.

그렇지만 33대에 이른 역대 총리 가운데는 발탁 배경이나 개인적 특성에 따라 실무형·실세형도 있었다.

남덕우(南悳祐·1980년 9월∼82년 1월)총리는 재무장관·경제부총리를 역임해 경제총리로 불렸다. 전두환(全斗煥)전 대통령의 올림픽 유치 지시에 "물가상승과 수도권 집중 심화 등 경제적 부작용이 크다"며 맞서기도 했다고 한다. 박태준(朴泰俊·2000년 1∼5월)총리도 포철 신화의 주인공답게 벤처와 IT 산업 육성에 전력을 쏟은 실무형 총리로 꼽힌다. 최규하(崔圭夏·75년 12월∼79년 12월)전 대통령이나 고건(高建·97년 3월∼98년 3월)전 서울시장도 각각 외교와 행정전문가로서 실무형에 가깝다.

실세형 총리로는 누가 뭐래도 김종필(金鍾泌·71년 6월∼75년 12월, 98년 3월∼2000년 1월)자민련 총재가 대표격이다. 힘이 있는 만큼 모든 일을 쉽게 처리했다. 필요하면 절차를 따지지 않고 곧바로 장관들에게 지시했다.

최규하 전 대통령 시절 신현확(申鉉碻·79년 12월∼80년 5월)총리도 과도기에 힘 빠진 청와대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직접 장관들을 독려하는 추진력을 보였다.

강영훈(姜英勳·88년 12월∼90년 12월)총리는 노태우(盧泰愚)전 대통령이 내각에 힘을 실어준 덕에 자신의 역량을 발휘한 경우. 당시 노동·학원문제 등 사회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내각에 대한 청와대 수석들의 섣부른 간섭을 막아줬다.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는 정권의 안정을 위해 뚝심있는 총리를 내세우기도 했다. '방탄형 총리'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안기부장 출신인 노신영(盧信永·85년 2월∼87년 5월)총리와 김정렬(金貞烈·87년 7월∼88년 2월)총리를 꼽을 수 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노재봉(盧在鳳·90년 12월∼91년 5월)총리나 밀가루 세례로 강경대 사건 파문을 일거에 뒤집은 정원식(鄭元植·91년 5월∼92년 10월)총리도 여기에 속한다.

정권의 취약한 정통성을 보완하기 위해 기용하는 덕망가도 있다. '얼굴마담'으로 불린다. 김상협(金相浹·82년 6월∼83년 10월)·이현재(李賢宰·88년 2월∼88년 12월)총리 등이다. 덕망을 우선하다 보면 행정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송상훈 기자

mode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