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格·人格, 그리고 자전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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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방자치단체장이 소형차를 타는 것도 뉴스가 된다. 얼마 전에 나온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 2백48개 기초·광역 지자체장 가운데 김완주 전주시장이 유일하게 1천5백㏄급 소형차를 관용차로 쓰고 있다. 관용차로 가장 선호되는 차종은 그랜저로, 단체장의 절반(50.8%)이 이 차를 타고 있다.

지자체의 재정 자립도가 전국 평균 58%에 불과한데도 이처럼 고급차를 선호하는 것은 '차격(車格)이 곧 인격'으로 치부되는 우리 사회의 체면문화 때문일 것이다. 국내 경차 시장이 나날이 쇠퇴하고, 당초 20%까지 높이기로 했던 정부·지자체 업무용 차량의 경차 비율이 1.1%에 불과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4년 전 2기 민선시장 취임 때부터 소형차를 고수해온 金전주시장은 단체장 모임에 갔다가 불청객으로 오인돼 주차관리인으로부터 박대를 당하는가 하면, 주위 사람들로부터는 "60만 시민의 자존심을 생각하라"는 충고를 듣기도 한다. 하지만 金시장은 소형차에 그치지 않고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엔 집에서 시청까지 5㎞를 자전거로 출근하는 자전거 예찬론자이기도 하다.

얼마 전 평교수로 돌아간 경북대 박찬석 전 총장 역시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주장하는 자전거 매니어. 5년 전부터 총장 관사에서 학교까지 14㎞를 하루같이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건강을 지켜온 朴전총장은 "차량 공해와 도심 교통난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자전거 타기"라고 말한다. 이제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사람들을 위해 자전거 얘기를 더 해보자.

『지구를 살리는 일곱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존 라이언 지음, 그물코 발간)이란 제목의 책은 자원을 덜 소비하고 오염물질을 줄임으로써 지구 생태계를 구할 첫 번째 불가사의한 물건으로 자전거를 꼽는다 (나머지 여섯 가지는 콘돔·천장선풍기·빨랫줄·타이국수·공공도서관·무당벌레). 자전거는 지금까지 발명된 교통수단 가운데 에너지 효율이 가장 높을 뿐만 아니라 이를 이용하는 사람의 건강에도 좋으며, 특히 세상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승용차 한 대가 달리는 차선 하나면 자전거 다섯 대가 이용 가능하고 승용차 한 대의 주차공간엔 자전거 열두 대를 세울 수 있다. 근거리에서 자전거 전용도로가 이동시킬수 있는 사람 수는 자동차에 비해 2∼6배에 이른다. 10㎞를 달릴 경우 자동차는 2천㏄ 가량의 이산화탄소와 2백㏄ 가량의 일산화탄소 외에 탄화수소·이산화질소를 내뿜어 지구를 오염시키지만 자전거는 오염물질 배출과는 관계가 없다.

자전거는 지난 6월 시민환경단체인 '풀꽃세상'이 주는 올해의 '풀꽃상' 본상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자연에 대한 존경심 회복을 기치로 내걸고 그동안 새·돌·풀·길·조개·꽃에 주었던 풀꽃상을 자전거에 준 것은 '자동차나 오토바이처럼 공간을 난폭하게 대하지 않고 풍경의 일부가 돼 세상을 겸손하게 바라보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풀꽃상' 특별상을 받은 경북 상주시는 자전거 도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1924년에 '조선 8도 자전거 경주대회'가 열렸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진 상주시는 4만3천여 가구, 인구 13만여 명에 자전거가 가구당 두 대꼴인 8만5천대나 되고 자전거 도로는 1백26㎞에 이른다. 이런 이점을 살려 지난 3월엔 자전거 공장을 유치했고 다음 달엔 자전거 박물관도 열 계획이다. 해마다 열리는 자전거 축제가 올해는 태풍 여파로 취소돼 아쉬움을 주고 있다.

일본·독일·네덜란드 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자전거 친화 정책을 펴 교통수송 분담률을 25%(일본)∼43%(네덜란드)로 끌어올렸다. 우리나라도 서울의 한강변을 비롯해 여러 곳에 자전거 길이 속속 생기고 각 지자체들도 자전거 전용도로 개설에 나서고 있지만 현재 교통수송 분담률은 목표치인 10%(2010년)에 크게 미달하는 2.4%에 그치고 있다. 바람이 서늘해지는 계절,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건강을 다지고 지구 살리기에도 동참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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