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작]장학금 풍성… 벤처 한다면 支援 봇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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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중앙일보 창간 37주년 기념 '대학생 기획·탐사 기사 공모' 에서 우수상을 받은 서울대 백일현(불어물문4)씨의 기사 '서울대생, 그 특권의 끝은 어디인가'. 소재가 흥미롭고 문제의식도 돋보인다. 논문 대필, 상류층 집안 자녀 동아리 등은 충격적이다. 독자 여러분과 함께 대학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편집자

내년 2월 서울대 인문대를 졸업할 예정인 K양은 최근 전화 한 통을 받고 당황했다. 대기업 S사의 계열사 인사팀 직원인데 취업상담을 해 주겠으니 당장 만나자는 것이었다. 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에게만 전화한다는 말에 혹시나 하고 나간 그녀는 또 한번 놀랐다. 현재 특채로 신입사원을 뽑고 있는데, '공부 잘하는 서울대생이기에' 간단한 자기소개서만 내 통과하면 이후 형식적인 면접과 신체검사를 거쳐 국내 굴지의 S사 직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최소 5단계에서 8단계에 이르는 기존의 공채시험을 안 치러도 된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입니까. 다른 대학에 다니거나 학점이 좋지 않은 친구들에게는 아예 없는 기회를 저만 누린다는 것이 미안하긴 했지만, 이것이 바로 서울대 다니는 이점이구나 생각하고 바로 지원했습니다."

서울대생은 졸업장도 따기 전부터 그 '이름값'을 실감한다.

이는 서울대 대학생활문화원이 2002년 2월 졸업 예정이던 학부생 2천1백51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1월부터 2개월 간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이 결과에 따르면 학교 교육이 '보통'을 간신히 넘는 수준이라고 평가하면서도(5점 만점에 전공교육 3.17, 교양교육 3.03), '서울대에서 공부한 것에 만족한다'고 답한 학생이 89%에 달했다. 이른바 '서울대 간판'에 대한 만족감으로 풀이될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이 실질적으로 경험하는 '특별한 혜택'은 서울대에 입학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지역사회는 매우 저렴한 가격에 시설이 좋은 학사를 제공하고, 잠시 다닌 대입·재수학원들은 장학금을 주겠다고 줄을 선다.

"학교 기숙사보다 더 싼 가격으로 호텔 같은 학사에서 살 수 있는 건 정말 행운이죠," C학사에서 산다는 A씨(국사3)의 말이다.

B씨(외교4)는 "별로 관계도 없는 학원들이 장학금을 줄 테니 이름 좀 쓰자는 통에 서너 개 광고에 이름 나오고 용돈 좀 벌었다는 친구들도 있다"고 말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이미 별도로 형성돼 있는 과외시장을 통해 쉽게 용돈을 번다. "사실 방학만 되면 고향에 내려가 다섯 건, 여섯 건씩 뛰어서 몇 백만원씩 챙겨오는 친구들이 꽤 돼요. 최근 문제가 된 '서울대생끼리 단결해 과외비 월 40만원 이하는 받지도 말자'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닌 거죠." 한 공대생의 지적이다.

또한 서울대는 다른 대학보다 더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수년간 과 사무실에서 근무해 오고 있는 직원 P씨는 "타 대학의 상황을 알아보니 대부분 한 과에서 한두명이 장학금을 받는 데 그치고 있었다"며 "서울대는 한 과에서만 수십 명이 장학금을 받는다"고 말했다.

심지어 동아리·학생 활동을 하면서도 '서울대 이권'을 경험한다. 한 스포츠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D씨(불문4)의 말이다.

"사실 지난 학기 동아리방이 없었는데 한 스포츠 회사가 용품뿐 아니라 컨테이너 동아리방을 만드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죠. 부원 가운데 그 회사 관계자와 잘 아는 사람이 있었죠. 학교에서 땅이 없다고 해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실제 스포츠 대행사들은 다른 대학에 비해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는 서울대와 계약하기 위해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인다는 게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거액 논문代筆 유혹까지

사회의 시각이 이렇다 보니, 서울대생들은 여러 유혹에 시달리기도 한다. 2000년에 경영대 대학원을 졸업한 E씨는 "재학 당시 몇 백만원 줄테니 대신 석사논문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실제 써 준 친구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털어놨다. 동포 출신 학생들은 또다른 제안을 받는다.

"편입학원의 교수라는 분이 저한테 어떤 정치인 딸의 이름으로 대학 편입시험을 봐달라고 하더군요. 편입시험 감독이 허술해 문제가 없을 거라면서요. 안하겠다고 하니까 수천만원까지 수고비를 올리는데, 참 떨치기 힘든 유혹이었습니다." F씨(경제·4)의 고백이다.

이처럼 서울대생들은 대학 입학에서부터 졸업까지, 다양한 특권과 유혹의 손길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남다른 지위와 혜택을 체득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서울대라는 '네임 밸류'를 학부생 때부터 적극 활용하려는 학생들도 점차 늘고 있다. 2000년 논란이 일었던 서울대생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기업화된 과외조직이나 최근 '누드 교과서'로 큰 성공을 거둔 ㈜이투스 그룹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학내 벤처 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한 학생은 "실제 서울대 재학생들로 구성된 벤처라고 하면 젊은 활기가 좋다며 기업들이 지원을 잘 해준다"며 "그래서 오히려 졸업 전에 벤처사업을 해 보려는 학생들이 많다"고 말했다.

'공부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한 서울대생들의 특권의식은 이제 재산 소유 정도에 따라 분화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서울대 내부에서도 '일반 학생'들과 구별되는 '특별한 그룹'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몇몇 단과대와 동아리들에 소위 '잘사는 학생들'이 몰리면서 이들 나름의 패션·놀이문화가 그 구성원들에게는 또다른 특권의식을 느끼게 하고 있다. 반면 다른 학생들에겐 박탈감을 안겨 준다.

최근 몇 년 새 새로 생긴 소위 '고급 스포츠'동아리들이 상류층 학생들로 구성돼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아무래도 해본 사람이 모이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국제교류 관련 학생단체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 인문대생은 "역사가 꽤 긴 국제교류 단체에 가입했는데, 가 보니 잘사는 학생들이 많아 거리감을 느껴 그냥 나왔다"고 토로했다.

아예 처음부터 비밀에 부쳐져 추천을 통해서만 가입할 수 있는 동아리도 있다. 역사가 매우 긴 한 단체에는 과거엔 '성적우수자나 집안형편이 좋은 사람을 선호한다'는 정도의 권고사항만 있었다. 그러나 현재 이 단체는 집안 형편과 관련된 엄격한 규정을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학생은 "그 단체에 들어가려면 재산이 50억원 이상 돼야 하며, 부모나 조부모가 서울대 출신이고 외국에 사는 친척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그 안에 있다가 나온 언니에게 들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고 싶어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닌가"라면서도 "타인들에게 배타적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가방' 든 학생 늘어

그러나 이제 서울대생이면 누구나 인식하고 있는 특권을 단순히 이용하거나 조직화하는 데 주력하기보다, 그 특권에 합당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G씨(의학·89년 졸)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는 서울대생이라는 것을 애써 부인하려는 사람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서울대 표지가 찍힌 가방이나 배지를 많이 가지고 다니는 것 같아요. 이젠 서울대생이라 말하고 그에 따르는 '특별대우'를 받는 데 거부감이 없다면, 그에 맞는 태도 또한 갖춰야 합니다."

H씨(경제학·2001년 졸)는 "특혜를 누릴 것은 다 누리면서 스스로 엘리트임을 부정하는 것이 더 위험한 것 같다"며 "오히려 받고 있는 특혜를 인정하고, 사회봉사 등을 통해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권행 교수(불문학)는 "과거에는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으로 서울대생들이 사회에 대한 빚을 갚았다면, 오늘날엔 또다른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정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대와 혜택에 부끄럽지 않은 능력을 갖는다면, 그런 단체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앞으로 충분히 잘 해 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제가 받은 것 이상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학생의 야무진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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