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추악한 탐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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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독일 영화 '타투'(감독 로베르트 슈벤트케)는 엽기적이다. 사람의 피부를 벗겨 팔고 사는 끔찍한 밀거래가 성행한다. 연쇄 살인사건도 첨가되니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타투'는 유미주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지상 최고의 아름다움 앞에선 인간의 생명마저 간단하게 무시하는 무시무시한 가치관이 깔려 있다. "세상은 타락했다. 절대미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식의 탐미주의적 발상이 일렁인다.

살인과 탐미라는 언뜻 화해할 수 없는 두 단어가 수렴하는 곳은 타투(문신)다. 예컨대 영화의 한 장면, 미끈한 미녀의 전신을 정교하게 수놓은 용무늬는 순간적으로 황홀감을 일으킨다. '조폭 마누라'에 나온 신은경의 등에 새겨진 조잡한 용과는 거리가 멀다. 도자기를 음각하듯 신체의 구석구석을 화려하게 물들인 각종 문양은 예술품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지나친 미의식이 양식을 파괴한다. 최고급 문신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욕망, 또 그것을 혼자만 즐기려고 하는 소유욕이 인간이란 숭고한 단어를 잊게 한다. 변태적 수집가는 화려한 문신이 새겨진 사람을 물건으로 간주하고, 그 물건을 확보하기 위해 끔찍한 살인극을 벌인다. 인터넷을 통해 밀거래가 이뤄지니 바로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얘기라는 현재성을 담보한다.

이렇듯 '타투'에는 모세혈관을 바짝 긴장시키는 공포가 담겨 있다. 안면을 벗겨내는 할리우드 스릴러 '양들의 침묵'이 연상된다. 일본의 전통 문신인 '이레즈미(入れ墨)'를 둘러싼 인피(人皮) 쟁탈전에 온몸이 움츠러든다.

'타투'는 범죄 스릴러다. 비밀스레 문신을 모으고 살인을 일삼는 범인을 추적하는 두 형사가 주인공이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강력계 반장 밍크(크리스티안 레들)와 마약 복용 경험이 있는 신참 형사 슈라더(아우구스트 딜)가 짝을 이뤄 정체 불명의 살인마와 퍼즐 게임을 벌인다.

베테랑 형사와 풋내기 경찰이 호흡을 맞춘다는 것은 '리쎌 웨폰''트레이닝 데이' 등의 할리우드 영화, 혹은 '투캅스''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의 한국 영화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슈벤트케 감독은 이처럼 평범해 보이는 구도에 '피부 벗기기'라는 가공할 상황을 대입하며 두 형사의 심리적 불안감을 촘촘하게 엮어나간다.

'타투'는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살인 용의자를 눈 앞에 두고 총도 못쏘는 어리숙한 새내기 형사 슈라더가 시간이 갈수록 노련해지는 모습에선 성장영화로, 아내를 교통사고로 잃고 오직 일에만 몰두하는 고참 형사 밍크와 아버지의 간섭을 피해 가출한 그의 딸이 갈등하는 장면에선 가족영화로 비친다.

또 슈라더와 사건을 해결하는 유일한 단서를 지닌 미모의 여성 마야(나데슈다 브레니케)의 사랑을 끼워넣는 등 곳곳에 영화 보는 잔재미를 심어놓았다. 가로등 불빛이 희미한 한밤의 길거리, 우울하고 음산한 주택가, 겁에 질려 높아지는 여인의 숨소리 등도 어둡고 칙칙한 범죄영화 분위기와 어울린다.

선홍빛 피가 뚝뚝 흐르는 사람의 피부로 손지갑을 만들어 경찰서에 소포를 보내는 장면에선 머리칼이 쭈뼛하게 선다. 여기저기서 무서운 장면만을 모아놓은 듯한 느낌도 주지만 각 인물의 행동 동기, 캐릭터간의 충돌 이유 등을 개연성 있게 그린 까닭에 무작정 충격 효과를 노린 작품처럼 비치진 않는다.

아쉽다면 애써 벌여놓은 공포를 싱겁게 마무리한다는 점. 막바지 반전도 앞부분의 긴장에 비하면 맥이 풀린다. 살인범의 정체를 일찍 알아챌 수도 있는데 이를 쉽게 건너뛴 것도 결점으로 남는다. 굳이 비판하자면 일본 문화를 신비화하는 서구인의 오리엔탈리즘도 노출된다. 27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박정호 기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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