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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중간광고, 이것이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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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이론가인 보드리야르는 현대사회를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한 '뫼비우스의 띠'처럼 주객이 전도된 세상으로 설명한다. 참과 거짓, 실제와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함께 뒤섞인 융합의 시대라는 것이다. 이 같은 포스트모던 현상을 주목하는 학자들은 허구의 주 생산자로 TV 광고를 지목한다. 상품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소비하기 때문이다. TV 속 허구의 세상을 모방하는 실제 모습을 우리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우상인 탤런트나 가수들을 맹목적으로 따라하는 '팬덤(fandom)'현상이다.

TV 프로그램 사이에 끼워넣는 중간광고 허용 여부에 대한 찬반 논쟁이 일고 있다. 중간광고 문제를 TV 프로그램과 광고, 그리고 현실의 경계 허물기로 본다면 탈근대와 관련된 철학적 주제로도 다룰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중간광고 논란을 보면 저마다 처한 입장에 따라 계산된 논리를 들이대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말싸움으로 흘러가는 인상이 짙다. 중간광고를 허용하라는 측에선 광고야말로 방송을 사회적 효용성을 가진 공적 재화로 만드는 데 기여한 일등공신이라고 주장한다. 반대 측에선 TV 광고가 시청자들의 권리를 위협하는 자본가들의 도구로 보고 있다. 서로 노림수가 다르니 접점을 찾기 힘들다.

허용론자들은 실용주의적 입장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들은 중간광고는 방송산업 진흥을 위한 재원 마련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강국으로서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우선적으로 재원 확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보다 질 높은 서비스를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매체 간의 균형 발전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중간광고의 도입으로 공룡 같은 지상파 TV가 광고시장을 더욱 과점(寡占)하고 다른 매체의 존립 기반을 흔들 수 있다고 비판한다.

우리 경우와는 반대로 중국은 TV 중간광고를 허용했다가 지난해부터 전면 금지했다. 시청자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정부 정책 차원에서 취한 조치다. 논란은 있지만, 중간광고 시행으로 광고 단가의 상승과 프로그램의 질 제고에 일부 기여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중국에선 중간광고의 도입이 한국에서 일부가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결과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즉 어떤 정책의 효과를 예측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 예이기도 하다.

광고에 관한 한 매우 자율적인 미국의 경우도 중간광고는 여전히 논쟁적인 이슈로 남아 있다. 학계에선 중간광고가 어린이 사고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프로가 자주 중단됨으로써 어린이들의 집중력이 현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광고를 매개로 한 장난감 산업과 TV 산업 간의 비밀스러운 연계 의혹도 학계의 집중적인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이는 곧 중간광고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도록 만들고 있다.

이 때문에 다른 방송사와의 차별성을 부각하려고 아예 중간광고를 폐지하는 방송사들도 있다. 또 중간광고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만을 해소할 목적으로 디지털 리코딩 기술을 이용한 주문형 비디오(VOD) 등 다양한 서비스가 도입돼 큰 호응을 얻고 있을 정도다. 중간광고로 지상파 방송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비판도 있다. 방송 시청률이 더욱 떨어지기 때문이다.

수동적인 이미지 소비자로 전락한 현대인의 위기 극복을 위해 하버마스는 자유로운 의사교환을 통해 합의와 동의를 구해 나가는 공적 영역의 확보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다양한 매체의 존재가 이 같은 공적 영역을 위해 필요조건임은 분명하다. 방송정책 입안가들은 중간광고 도입으로 야기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좀더 진지하고 심층적으로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안민호 숙명여대 교수·언론정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