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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코미디 '그때 그사람들' 임상수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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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 1979년 10.26 사건을 다룬 영화 "그때 그사람들"을 연출한 임상수 감독이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권력과 영화의 관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김태성 기자

임상수(43) 감독은 스스로 '비주류'라고 말한다. 맑고 고운 얘기로 가슴을 따듯하게 적시는 건 그의 전공이 아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눈물'(2000), '바람난 가족'(2003) 등 그의 전작은 객석을 불편하게 했다. 우리 시대의 성.청소년 문제를 과감하게 파헤친 그의 키워드는 '권위.억압에 대한 도전'. 다 알고 있는 듯하면서도 정작 정면에서 바라보기를 꺼리는 부분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그가 이번에는 정치에 눈길을 돌렸다. 다음달 3일 개봉할 '그때 그 사람들'에서 1979년의 10.26 사건(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사건)을 블랙코미디로 다룬다. 제작사 측은 "당일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24시간, 상부의 명령에 따르다 희생된 사람들이 중심이다"고 밝혔지만 영화는 개봉 전부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심리적 부담이 크겠다.

"영화 외적인 반응에 깜짝 놀랐다. 아마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씨가 정치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지난 대선 전에 기획됐다. 26년 전의 사건을 담담하고 냉정하게 그릴 뿐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그런 건 없다. 나는 10.26 사건 당시 경복고 2학년이었다. 청와대와 가까운 효자동에서 살았던 까닭에 남보다 그날을 잘 기억한다. 그때부터 신문.잡지 등 관련 자료를 샅샅이 읽었다. 영화 감독으로서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소재다."

-TV.라디오에서 여러 차례 다뤘다.

"알고 있다. 신문도 특집 형태로 소개했고, 관계자들 회고록도 나왔다. 그런데 대부분 보안사 지하실에서 작성됐던 수사기록이나 재판기록을 풀어쓴 정도다. 그걸 100% 사실로 믿을 수 있을까. 시해 주도자들은 군사재판을 받고 이내 사형됐다. 살아남은 사람도 지금껏 입을 다물고 있다. 문명국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권력의 핵심보다는 주변부에 더 무게를 실었다는데….

"그렇다. 거대한 역사 속에 잊힌 조연, 단역들을 주목했다. 이유나 영문도 모르고 중앙정보부장의 발사 명령을 무조건 따라야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고뇌를 공들여 묘사했다. 누구를 처단, 판단하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사실과 허구의 비중은.

"주요 인물의 동선(하루 일정)은 다 사실에 근거했다. 박 대통령의 대사도 대부분 그의 어록에서 따왔다. 세부 상황.심리 묘사 등은 내 창작이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그간 나온 모든 회고록을 조사했으나 거의 수박 겉핥기에 불과했다. 정확한 기록이 없는 나라, 그래서 지금 이 영화도 논란이 되지 않겠는가."

-해석의 문제는 피할 수 없다.

"당연히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다만 감정적 다툼은 바라지 않는다. 사실을 가지고 토론했으면 한다. 짧은 영화에 모든 걸 담을 순 없다. 누구나 그렇듯 박 대통령도 영욕이 있다. 합리적.객관적 논쟁은 오히려 희망사항이다. 과거를 잘 모르는 요즘 젊은이가 현대사를 공부할 기회도 되지 않을까."

- 색깔이 비슷한 영화를 꼽자면.

"올리버 스톤 감독의 '닉슨''JFK'가 생각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지난해 '효자동 이발사'도 권력을 풍자했지만 팬터지 성격이 강했다. 이번 영화는 신랄한 블랙 코미디다. 약간의 액션과 스릴러를 덧붙였다. 할 말이 있어도 주변 눈치를 보며 가슴에 묻어두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

박정호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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