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접흡연… 자녀 학습능력 떨어뜨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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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5면

갑자기 천식증세를 심하게 보인 아들(2)을 안고 지난주 서울S병원을 찾은 주부 강모(29)씨. 그녀는 "남편이 골초인데 아이가 기침을 자주 해 혹시 천식에 걸리지 않았는지 걱정이 돼 병원을 찾았다"고 씁쓸해 했다.

공주대 간접흡연평가팀은 최근 비흡연자인 K씨(여·65·충남 공주시)의 코티닌 농도를 측정했다. K씨의 침 중 코티닌 농도는 헤비 스모커 수준인 5백80ppb(1ppb는 10억분의 1).

니코틴의 대사산물인 코티닌은 우리가 담배연기에 얼마나 노출돼 있나를 알려주는 지표로 흔히 쓰인다. 보통 침의 코티닌 농도가 10ppb 이상이면 초기 간접흡연자, 3백ppb 이상이면 헤비 스모커로 분류된다. K씨는 담배를 하루 두 갑씩 피우는 남편(코티닌 농도 6백50ppb)이 내뿜은 연기의 희생자였다.

◇간접흡연에 유해물질 더 많다=미국은 이미 30년 전부터 간접흡연을 문제 삼았다.미국 환경보호청(EPA)은 1992년 환경 중 담배연기(ETS)를 1군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담배연기는 주류(메인 스트림)연기와 비주류(사이드 스트림)연기로 구분된다. 주류 연기는 연기가 필터를 거쳐 흡연자의 폐까지 갔다가 일단 걸러져 나온 것. 비주류 연기는 흡연자가 들고 있는 담배 자체가 타들어가면서 공기 중에 직접 확산된 것이다.

공주대 환경교육과 신호상 교수는 "실내에서 흡연하면 실내공기 중 담배연기의 75~85%가 비주류 연기"며 "비주류 연기는 공기에 희석되므로 그 농도가 낮지만 필터·폐 등에 여과되지 않아 건강에 해로운 성분이 주류 연기보다 많다"고 강조했다.

비주류 연기에는 벤조피렌(발암물질)이 3.4배(주류 연기 대비), 타르가 4.3배, 톨루엔이 5.6배나 더 들어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의 학습능력 떨어뜨린다=국립암센터 호흡기내과 황보빈 전문의는 "신생아나 영·유아가 간접흡연의 피해를 가장 심하게 받는다"며 "특히 천식·만성 기침·폐렴·기관지염 등 호흡기 질환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가족 중에 흡연자가 있으면 아이가 6세가 되기 전에 천식에 걸릴 위험이 두배나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미국 레스피레토리 앤 크리티컬케어 메디신지 2002 7월 15일).

자녀 천식유발률이 비흡연 가정은 3%인데 반해 흡연 가정은 6%에 이르는 것. 또 비흡연 가정의 자녀는 5%가 15세 이전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나 가족 중 흡연자가 1명이면 8%, 3명이면 12%, 4명 이상이면 15%로 흡연율이 증가한다는 것.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송윤미 교수는 "흡연하는 어머니와 함께 지낸 아이는 폐기능이 평균 3~5% 떨어진다"며 "흡연 부모의 자녀가 중이염을 앓게 될 위험은 1.6배 정도"라고 설명했다.

올 5월 미국 볼티모어에서 열린 미국 소아과학회에선 흡연하는 부모를 둔 아이는 읽기능력·수학·논리적 사고력·추리력 등 학습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아이의 혈중 코티닌 농도가 높으면 읽기·수학시험 등을 망친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여성의 수태율도 낮춘다=골초 남편과 같이 사는 비흡연 여성은 폐암에 걸리기 쉽다.

일본에서 26만명을 16년간 추적조사한 결과 남편의 흡연량이 많을수록 비흡연 아내의 폐암 발생률이 높아졌다. 또 미국심장학회(AHA)는 92년 집안에 흡연자가 있으면 심장병 발생위험이 30% 높아진다고 발표했다.

간접흡연은 여성의 수태율도 낮춘다.흡연하면 남성의 정자수가 16% 감소하고 여성의 수태율이 20% 낮아진다.

인제대 백병원 가정의학과 서홍관 교수는 "막힌 공간은 모두 금연을 의무화해야 간접흡연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며 "같은 공간에서 흡연석·금연석으로 나누거나 김포공항 흡연실 등 위가 뚫린 흡연실은 간접흡연 피해방지에 아무 도움이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파트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워도 가족이 간접흡연 피해를 보게 된다"며 "굳이 피워야 한다면 집안이나 금연건물에서 상당거리(1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피울 것"을 권했다.

한편 국립암센터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이달 25일 오후 1시30분부터 5시30분까지 경기도 일산 국립암센터 강당에서 '간접흡연과 건강'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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