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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 적은 소니·지멘스가 삼성전자보다 현찰 훨씬 많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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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유가증권 시장 상장사들의 현금성 자산은 2004년 말 46조5825억원에서 5년 새 81.9%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565조6970억원에서 829조7366억원으로 46.7% 늘었다. 또 2000년대 들어 ‘상생경영’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퍼지면서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에 대한 현금 결제 비율을 높였다. 매출 성장폭 이상의 현금 수요가 생긴 것이다.

여기에 적대적 인수합병(M&A) 등에 대비하기 위한 실탄을 미리 챙겨놓을 필요성도 커졌다. 2003~2005년 소버린자산운용의 SK㈜(현 SK㈜와 SK에너지)에 대한 경영권 공격, 2006년 ‘기업 사냥꾼’ 칼 아이칸의 KT&G 주식 매집 등을 보면서 얻은 교훈에 따른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이병기 박사는 “기업의 매출이 늘면 결제 대금과 운영 자금 등 현금 수요도 늘어난다”며 “이로 인해 현금성 자산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기업의 현금성 자산의 증가 속도는 결코 빠르지 않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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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글로벌 기업들은 한국 기업보다 더 많은 현금성 자산을 쌓아놓고 있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의 연결재무제표 기준 현금성 자산 은 지난해 말 10조8400억원. 이 역시 국내 1위다. 삼성전자보다 매출이 작은 일본의 소니는 올 3월 말 현재 1조1916억 엔(약 16조원)을 갖고 있다. 삼성전자보다 50%가량 많다. 본지가 소니의 2010 회계연도(2009년 4월~2010년 3월) 사업보고서에서 확인한 내용이다. 삼성전자와 매출 규모가 비슷한 독일 지멘스도 지난해 9월 말 현재 101억5900만 유로(15조7000억원)의 현금성 자산을 쌓아놓았다. 소니와는 비슷하고, 삼성전자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삼성전자·소니·지멘스 모두 단기금융상품 제외).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의 이승우 IT팀장은 “소니보다 이익을 훨씬 많이 내는 삼성전자의 현금성 자산이 오히려 적다는 것은 그만큼 투자를 활발하게 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연결 기준 10조23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지만, 소니는 408억 엔의 손실을 기록했다.

국내 기업들의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급증하기는 했다. 정부의 지적대로 투자가 부진해서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설비 투자 규모는 84조6800억원으로 2008년(93조1100억원)보다 9.1% 감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다. 그러나 요즘은 투자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올 1분기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설비투자 총액은 24조1300억원으로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이는 기업들의 분기보고서에서도 나타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1분기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당기순이익 총액은 13조3728억원이다. 반면 1분기에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말보다 2조5716억원 느는 데 그쳤다. 당기순익과 현금성 자산 증가분이 11조원 가까이 차이 난다. 삼일회계법인 정도삼 전무는 “배당을 하지 않았다면, 당기순이익에 감가상각비를 더한 만큼이 현금·투자·재고 자산 등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며 “11조원의 상당 부분은 설비투자에 쓰였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때론 ‘유보율’이라는 잣대로 기업들의 투자 부진을 지적하기도 한다. 시가총액 30대 기업의 유보율은 2008년 말 2593%에서 지난해 말 2887%로 1년 만에 294%포인트 높아졌다. 유보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기업들이 돈을 벌어 투자하지 않고 내부에 쌓았다’는 식으로 종종 해석된다. 하지만 이는 ‘유보율’이나 ‘잉여금’이라는 이름에서 비롯된 오해다.

권혁주 기자

◆유보율=잉여금을 납입 자본금으로 나눈 수치다. 현행 회계 규정상 돈을 벌어 설비투자를 한 부분도 잉여금으로 잡힌다. 설비투자를 많이 해도 빌린 돈으로 한 것이 아니라면 유보율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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