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공화국'의 逆說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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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서울 남산타워 전망대에서 강남의 아파트단지를 바라보는 일본 관광객들은 두번 놀란다고 한다. 단지의 규모에 놀라고 그 가격에 또 한번 놀란다. 미국에 이민 가 성공한 동포들이 강남의 아파트값을 전해 듣고 허탈감에 빠지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평당 4천만원을 호가하는 재건축아파트는 극단적 예외로 치자. 평당 2천만원대에 육박한 대치동 일대의 아파트값은 비싸기로 이름난 도쿄나 홍콩의 고급아파트 수준을 훨씬 웃돈다.

물론 절대가격은 우리가 낮다. 그러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감안하면 20~40% 비싸다는 것이 우리증권의 분석이다. 삼성증권이 주가수익률 계산방식으로 이들 아파트의 전세금 이자수익과 매매가격간 비율을 계산해 본 결과 그 배율은 35~40배로 삼성전자의 예상수익률(8.1배)을 크게 웃돌았다(중앙일보 9월 7일자).

강남의 1백가구 이상 아파트단지 20여만가구의 시가총액은 1백조원에 육박한다. 10여년전 일본이 미국을 사들일 때처럼 우리도 강남아파트들을 팔면 미국의 웬만한 주(州)하나는 사고도 남으리라. 어느 새 우리가 이런 자산부국(富國)이 되었는가. 1989년 잘 나가던 압구정동 아파트의 평당 최고가격이 5백28만원이었다.1인당 국민소득은 1만달러 문턱을 뛰어넘지 못하면서 아파트값만 몇배로 치솟은 셈이다.

물론 주택가격 상승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선진국들도 부동산거품이 골칫거리지만 집값 상승률은 연간 10%내외다. 우리처럼 30~50%씩 폭등하지는 않는다. 연간 3~4%대의 인플레에는 안달복달하면서 수십% 단위의 아파트 전세 및 매매가 폭등은 방치해오다니 이런 정책의 역설이 없다.

집값은 경제성장과 금리 및 주가 세가지와 연관이 있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최신 분석에 따르면 선진국에서 경제가 1% 성장하면 집값은 다음 3년에 걸쳐 1~3% 실질상승한다.실질금리(단기)가 1%포인트 낮아지면 집값은 1년에 걸쳐 0.5~1.2% 오른다. 투자주식가액이 10% 불어나면 3년에 걸쳐 집값은 1% 정도 오른다. 따라서 집값은 '폭등'과는 거리가 멀고, 몇십년째 집값 변동이 없는 강북의 주택들도 허다하다.

한국은 98년부터 아파트비율이 단독주택을 추월한 '아파트공화국'이다. 환금성과 편익성에다 저금리에 따른 과잉 유동성이 날개를 달면서 갈수록 투기자산화하고 있다. 지난 1년반 동안 40조원의 가계대출이 부동산시장에 쏟아졌다. 부동산거품은 경제에 독(毒)이며 안정적 주거의 바탕을 흔든다는 점에서 그 해악은 주식거품과는 비교도 안된다.

주택수요가 고급화·선진화하면서 교통과 생활편익시설, 교육과 친환경적 주거여건 등이 양호한 '강남특구'로 몰려드는 것을 막을 도리는 없다. 문제는 정책이 이들 수요를 체계적으로 분산·관리 못하고 경제회생이란 이름 아래 투기와 가격폭등을 방치한 데 있다. 서울의 아파트값 거품에 따른 불로소득이 지난 한해 동안 50조원이라는 추계도 있다.

'국민의 정부'가 서민들 가슴에 한(恨)을 심으며 지지기반도 아닌 특정지역 자산계층에 결과적으로 엄청난 부를 안긴 것은 또하나의 기막힌 역설이다. DJ정부 최대의 실책은 바로 이 부동산거품이다. 특히 아파트거품은 80년대 말보다 훨씬 악성이란 진단들이다. 재산세현실화·기준시가상향조정·자금출처조사는 거품을 걷어내는 작업이다.거품이 생기지 않게 하는 근본대책은 지금부터다. DJ정부는 남은 임기 내내 속죄하는 마음으로 이에 매달려 대다수 국민들에게 내집에의 꿈과 희망을 되돌려줘야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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