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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2위 석유국 장악 중동'새판 짜기'포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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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12일 유엔 연설에서 이라크에 대한 응징을 역설했다. 그러나 세계는 이라크 공격의 필요성을 납득하지 못한다.9·11 테러와 관련된 것도 아니고,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한 확실한 증거도 없다.

이라크가 조만간 핵무기를 갖게 될 것이라는 미국의 주장에 무기사찰 당사자인 유엔은 회의적이다.

이라크의 군사력이 주변국에 위협적이라는 주장도 비현실적이다. 현재 이라크의 군사력은 걸프전 이전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은 왜 이라크를 공격하는가? 지난달 22일자 영국 신문 가디언은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는 이유가 테러 위협도 WMD도 후세인의 폭정도 아니고 중동에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축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신문 보스턴 글로브도 11일자 기사에서 부시 행정부 내 매파는 후세인 제거를 중동에서 일어날 대변화의 시작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들의 최종 목표는 중동에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과거 미국의 중동 정책은 세력균형 유지가 기본이었다. 이란-이라크 전쟁 때 미국은 이란혁명 확산을 막기 위해 이라크를 지원했다. 하지만 이라크의 승리를 원치 않았다. 이란이 무너지면 소련이 들어오고, 이라크가 중동의 패자(覇者)가 되면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가 위태로워진다.

미국은 이란에 무기를 비밀리에 공급했다. 걸프전에서 후세인을 살려둔 이유도 이란이 공백을 메우는 상황을 우려한 때문이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세력균형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같은 변화의 배경은 중동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크게 낮춘 점, 막강한 군사력으로 전쟁을 단기간에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미국은 세계 제2위의 석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이라크를 '석유보호국'으로 만들 생각인 것 같다.

이를 토대로 9·11 이후 갈등 관계에 있는 석유대국 사우디아라비아를 압박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또 다른 '악의 축'인 이란을 이라크·아프가니스탄·중앙아시아 3면에서 포위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계획대로 될지 의문이다. 40만명 이라크 군은 상당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라크는 걸프전 때와 달리 사막전 아닌 시가전으로 맞설 계획이다. 시가전에선 방어하는 측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미국의 공군력과 첨단무기도 시가전에선 위력이 떨어질 것이다. 낯선 지형, 군인과 민간인 식별이 어려운 전투 환경에서 많은 인명 피해를 각오해야 한다. 최고 1천억달러에 이를 전비(戰費) 조달,세계경제에 미칠 악영향도 큰 문제다.

더 중요한 것은 아랍권에 미칠 영향이다. 대부분 아랍 국가들은 이라크 공격을 반대하며, 반미 분위기가 고조돼 있다.

후세인은 미국의 공격을 아랍과 미국-이스라엘의 대결 구도로 몰아가기 위해 이스라엘을 미사일 공격할 것이며, 이스라엘은 핵무기까지 동원해 반격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중동 전체가 전화(戰火)에 휩싸이고, 이집트·사우디·요르단 등 친미국가들에서 정권 붕괴의 도미노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일부 미국인들은 베트남전의 악몽 재연을 우려한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방차관보와 해군장관을 지낸 제임스 웹은 최근 워싱턴 포스트 기고에서 후세인 정권 타도 후 미군이 30년 이상 이라크에 주둔해야 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미국이 중동의 모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안 중국이 '횡재'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경계했다.

정우량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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