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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실효성 없는 누더기 법" "민주주의 후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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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른바 '4대 개혁법안' 중 언론관계법만이 지난해 12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신문법('신문 등의 자유와 기능보장에 관한 법률')과 언론중재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다. 패키지 법안 중 방송법은 2월로 처리가 미뤄졌다. 여야는 줄다리기가 길 거라는 예상을 깨고 절충안에 비교적 쉽게 동의했다. 이에 대해 학계.언론계.시민사회의 평가는 극도로 엇갈린다.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비판부터 실효성 없는 '누더기 법'이라는 평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어쨌든 열차는 출발했고, 언론사들은 법이 가져올 변화와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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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법, 협상 과정에서 '넣고 빼고'=통과된 신문법은 지난해 10월 열린우리당이 국회에 제출했던 법안과 여러모로 다르다. 협상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삭제되거나 변형됐다.

'시장지배적 사업자'와 관련한 조항은 살아남았다. 발행부수 기준으로 1개사가 30%, 3개사가 60% 이상 시장을 차지하면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된다. 그 지위를 남용해 시장질서를 해치면 처벌받는다. 또 시장지배적 사업자는 신문발전기금을 받을 수 없다. 여기까지는 여당 원안과 같지만 기준은 대폭 완화됐다. 대상이 11개 중앙종합일간지에서 전국 일간신문(120여개 추산)으로 늘어난 것이다. 이로써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될 것이 확실시되던 '중앙.조선.동아' 등 메이저 3사가 제외될 가능성이 커졌다.

'공적책임' 조항도 유지됐다. 법에 따르면 신문은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균형있게' 수렴해야 한다. 반면 언론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지적을 받아 온 편집위원회.독자권익위원회 설치.운영에 대한 강제 조항은 '자율'로 방향이 선회됐다. 광고비율을 지면의 50%로 묶는 내용도 사라졌다.

새로운 법안 내용으론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고 신문산업의 진흥을 위해 문화관광부에 신문발전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이 포함됐다. 이 위원회의 임무는 신문발전기금의 지원대상을 선정하고 신문사들이 제출하는 경영자료를 검증.공개하는 일이다. 위원회는 9명으로 구성되는데 3명은 문화부 장관이 직접, 나머지는 국회의장.신문협회 등의 추천을 받아 장관이 위촉한다.

◆ 권한 커진 언론중재위원회=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나라 중 법정 기구로 언론중재위원회를 두고 있는 건 한국이 유일하다. 대부분 언론 스스로 독자의 권리 침해를 해소하고 있다. 그런데 우린 거꾸로 언론중재위에 힘을 더 실어주는 쪽을 택했다. 기존 정기간행물법과 방송법 등에 흩어져 있던 언론피해 구제제도를 한데 모으고 강화했다.

법에 따르면 중재위는 언론 보도 내용에 대해 해당 언론사에 직권으로 시정을 권고하고 그 내용을 외부에 공표할 수 있다. 손해배상에 대해서도 조정과 중재를 할 수 있다. 또 피해자가 아닌 언론시민단체 등 제3자도 중재위에 시정권고를 신청할 수 있다. 언론 피해의 자율적 예방 및 구제를 위해 '고충처리인'을 반드시 둬야 한다는 규정도 들어갔다.

◆ 엇갈리는 평가=법 통과 후 신문사 간의 사설 논조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시민단체의 상반된 성명서도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는 "위헌적 내용이 가득한 두 법안을 여야가 야합으로 통과시켰다"며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언론개혁시민연대 등은 "신문개혁의 핵심과제였던 소유지분 분산 조항이 제외되고 편집권 독립조항 전반이 외면당하는 등 알맹이가 빠졌다"고 지적했다. 학계의 경우 이번 법이 헌법적 가치인 언론의 자유를 후퇴시킬 거라는 부정적 의견이 많은 가운데, 언론개혁이 촉진될 것으로 기대하는 일부 목소리도 있다.

김택환 미디어 전문기자,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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