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만에 세번째 총리서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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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만 2개월 만에 세번째 총리서리가 임명됐다. 위헌 지적이 그토록 거세고 국정 공백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컸음에도 또 '서리'를 임명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오기(傲氣)라고 할 수밖에 없다. 법에 규정된 총리대행 제도를 굳이 마다한 것은 바른 선택이 아니다. 그럼에도 총리서리 임명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공언했던 한나라당이 시급한 수해 복구를 위해 그 경고를 접고 김석수 총리서리가 부서(副署)한 추경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일단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한 고비를 넘겼을 뿐 총리 문제가 정리된 것은 아니다. 장상·장대환씨가 국회 인준 과정에서 보았듯, 또 어떤 지뢰밭이 있을지 짐작키 어렵다. 청와대가 두 張씨의 경험을 살려 검증에 검증을 거듭했다지만 金총리서리도 두 차례의 청문회를 통해 높아진 도덕적 잣대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 도덕성에 흠결이 없더라도 국정 수행 능력에 대해서는 철저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 사실 5개월 남짓한 짧은 임기라고 하지만 주요 국정 현안이 산적해 있고 고령의 대통령이 레임덕에 시달리는 만큼 총리의 존재는 오히려 막중하다. 당장 전례 드문 수해 복구를 비롯, 아시안게임과 대선을 원만히 치러야 하고 급변하는 대북 문제와 위기 경보음을 내는 경제 현안을 추슬러야 한다.

국회는 金총리서리에 대한 도덕성과 국정 수행 능력을 철저히 검증해 나가되 인신 비방조의 탐문으로 두달이 넘은 국정공백 상태가 더 이상 길어지는 것을 막는 슬기를 발휘할 필요가 있다. 한나라당의 "문서의 형식을 따지지 않겠다"는 대응도 적절하다. 金총리서리도 국회 본회의 시정연설을 경제부총리에게 대독토록 하는 등 자신을 '총리 내정자'로 간주하는 정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내정자'로서 집무는 하되 金대통령의 아집 때문에 고조된 정부와 국회 간의 대치상태를 더욱 경화시킬 불필요한 행보는 삼가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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