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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자 보건체계 구축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9월 4일 발생한 정신질환자의 어린이 상해사건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안고 있었던 정신질환자 관리체계의 허점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을 접한 일부 국민은 정신질환자는 잠재적 범죄자이기 때문에 길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며, 정신병원에 모두 입원시켜야 한다고까지 얘기한다. 정신보건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이를 위해선 정신질환에 대한 역사적 흐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시각은 역사적으로 많은 변화를 거쳐 왔다. 농경사회에서는 정신질환을 귀신 들렸다고 하면서 굿을 하고 부적을 지니게 하여 치료하고자 했다. 지금 보면 비합리적인 질병관이었지만, 그래도 그 당시에는 대가족 제도 아래서 여러 가족의 도움과 간호가 있었고, 여러 대를 같이 살아온 이웃도 정신질환자들을 내치지 않아 사회와 통합돼 살아갈 수 있었다. 농사일도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었던 정신질환자들은 어느 정도의 생산성을 유지한 사회의 일원이었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진행된 도시화 및 핵가족화는 정신질환자 가족의 간호능력을 감소시키고 지역사회의 통합력이 와해된 익명적 도시는 이들을 배척했으며, 생산성도 잃게 만들었다. 농촌과 달리 도시에서 정신질환자는 일을 갖기 힘들게 된 것이다. 결국 가족은 견디지 못해 이들을 버리게 되고, 도시의 부랑인이 되거나 정신병원에 장기입원당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1960년대 이후 의학의 발달로 인해 정신질환은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으로 분류되고 있다. 사고나 감정을 조절하는 뇌신경전달물질이 정상적인 범위보다 높거나 낮은 만성질환이며, 이 점에서 혈압과 혈당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똑같은 만성질환이라는 것이다. 완치되기는 어렵지만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을 교정하는 약물치료와 스트레스 관리, 적절한 운동과 일이 있으면 사회생활에 큰 지장이 없을 정도로 관리될 수 있는 현대인의 만성질환일 뿐이다.

이에 따라 선진국에서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관리체계를 바꾸기 시작했다. 비경제적·비인간적·비치료적인 장기입원보다 지역사회에서 정신질환자를 조기에 치료하고 재활하기 위해 지역사회 정신보건체계를 구축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정신보건센터법을 제정하고, 조기발견·조기치료 및 재활을 통해 생산적인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전국적인 정신보건체계를 구축했는데, 현재 모든 선진국이 이와 유사한 제도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도 95년 정신보건법 제정 이후 지역사회 정신보건으로 정책의 중심이 바뀌었다.

이번 사건의 정신질환자는 본인이 약물치료를 거부했다고 했고, 경제적인 이유로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고 했다. 본인은 물론 가족의 경제력을 떨어뜨리는 정신질환자가 경제적 이유로 정신질환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그들을 위해서이고, 불쌍한 그들의 가족을 위해서이며, 우리들의 아이들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중증 정신질환은 보건복지부의 저소득층 난치성질환자의 의료비지원사업에 포함시켜야 하며, 외국처럼 치료비의 본인부담금 비율을 낮춰줘야 한다. 치료를 받기 싫어하는 정신질환자는 찾아서 가정을 방문해 치료하도록 설득하고, 이들을 치료체계로 연결해줘야 한다. 이런 공공적 정신보건사업 수행을 위해 정신보건센터와 보건소의 정신보건사업을 확대해야 한다. 사고도 많고, 자살도 많은 우리나라 국민의 안전과 정신건강을 지켜주는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불어나는 강물의 범람을 막기 위해서는 튼튼한 제방이 필요하다. 우리가 그렇게 원하는 선진국이 되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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