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대통령을 뽑읍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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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대선이 석 달 남짓 남았지만 아직 후보가 누군지도 모르는 것이 우리의 정치 현실이다. 자연히 정책 대결은 실종되고 유권자들의 냉소주의만 번지고 있다. 막판에 백화점식의 공약이 쏟아져 나오겠지만 일반 유권자들이 후보 간의 입장 차이를 느끼기는 힘들 것이다. 이러다 보니 돈과 연고가 판을 치게 되고, 논리보다는 느낌에 의해 후보를 택하게 되는 것이다. 출마 예상자들의 지지율이 들쭉날쭉하는 것도 '야, 바로 이거야' 하는 식의 펀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유권자들의 관심사는 의외로 한두 가지에 집중돼 있다. 경제와 교육이 그것이다. 의아한 것은 후보들이 이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공략하지 못하고 경쟁력이니 형평이니 하는 식의 추상적인 얘기들만 반복한다는 것이다. 경제는 후보 자신의 지식보다는 유능하고 바른말 하는 참모를 주변에 두는 것이 관건이다. 그런데 충성스럽지만 유능하지 않거나, 유능하긴 하지만 용기가 없는 사람들이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교육은 어떤가. 선거참모 몇 명이 교육 정책을 구상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망가져 있다. 따라서 후보 자신이 뭔가 비전을 보여야 한다. 사실 다음 집권 기간 5년 동안에 교육 문제 하나만을 확실하게 해결할 후보가 나선다면 우리 가족은 주저하지 않고 몰표( ! )를 던지겠다. 아니,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만 않게 해준대도 대단한 분이라 여기고 지지를 하겠다.

교육이 백년대계는 못될지언정 망국의 지름길이 되게 할 수는 없다. 잘 사는 나라가 되려면 성장과 분배가 제대로 이뤄져야 하는데, 과거의 교육은 이 두 목표를 동시에 충족시켰다. 높은 교육열로 양산된 고졸 수준의 인력은 산업화 시절에 필요한 노동 수요와 직결됐고, 과외 없이도 열심히 공부하면 대학에 갔고 일류 직장을 다닐 수 있었다.교육의 힘이 사회적 신분 상승이라는 확실한 소득 재분배를 이룬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대학을 나오고도 쓰임새가 없어 외면당하는 인력이 부지기수다. 세상은 개성과 창의력을 요구하는데, 교육은 점점 더 규격화돼 가고 있다. 사설 학원에서 입시 기술이나 익혀 대학에 들어가 뻔한 이론들 몇 년 더 배워 봤자 산업 현장에서 환영받을 리 없다. 더 큰 문제는 대학에 가려면 학원을 가야 하고,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따라서 부잣집 애들이 좋은 대학에 가기 쉽다는 역(逆)분배 현상이다. 한마디로 교육이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저해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사교육 시장이 초래하는 다양한 자원 배분 왜곡까지 고려한다면 교육이 나라 경제를 망친다는 주장은 과장이 아니다.

우리 집도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된 다음부터 부부가 버는 돈의 상당 부분은 교육비로, 직장 다니고 남는 시간은 교대로 애들 감시( ! )하는 데 쓴다. 그런데 더 큰 고통은 도대체 입시 준비를 어떻게 시켜야 할지 감감하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일단 공부 열심히 하고 나중에 수준에 맞게 대학을 선택하면 됐는데, 이제는 입시 제도가 복잡해져 아예 처음부터 학교를 정하고 공부를 하라는 기막힌 말까지 나온다. 그것도 해마다 찔끔거리고 바꿔대니 재수시키는 것도 두렵다.

교육 수요자들의 선택을 좁히고 거래비용을 늘리며 나아가 교육의 질을 저하시키는 지금의 교육제도는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다만, 변화의 과정에서 일관성과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자주 바뀌면 효과가 없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몇 명의 생각으로 단기간에 고치기에는 너무 병들어 있다.

어느 대선 후보가 '내 임기 중에는 절대로 교육제도를 바꾸지 않겠다. 대신 3년 정도 철저히 연구해 시안을 만들고 남은 기간에는 각계 각층의 의견을 들어 정말 국민이 납득할 대안을 내놓겠다' 라는 약속을 한다면 어떨까. 국내총생산(GDP)의 몇 %를 교육에 투자한다는 식의 참모가 써준 원고나 읊조리는, 교육이 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는 다른 후보들에 비해 훨씬 신선한 선택이 될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진정한 교육대통령을 뽑을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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