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출마선언 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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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2일로 예정됐던 무소속 정몽준(鄭夢準)의원의 대선 출마 선언이 갑자기 늦춰졌다.鄭의원은 4일 강릉 수해현장에서 "국민의 관심이 수해 복구에 집중되도록 정치권이 도와줘야 하고 여론도 그런 쪽이어서 나의 정치일정을 조정할 생각"이라고 밝혔다."구체적인 일정은 같이 하는 분들과 상의해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鄭의원 측은 "수해 피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심각해 鄭의원이 충격을 받은 것 같다"며 "이런 분위기에서 대선 출마를 발표하면 부정적인 여론이 일어날 수 있다"고 연기 배경을 설명했다. 피해 복구가 어느 정도 진행된 뒤 출마 선언을 해야 '정몽준 지지 흐름'을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 하더라도 鄭의원의 출마를 실무적으로 준비해 온 참모들은 당황했다. 발표 직전까지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鄭의원 진영에서도 별로 없었다. 한 관계자는 "어제부터 후원회원들에게 12일에 선언을 한다는 내용의 초청장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출마 선언 장소로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을 예약까지 해 놓은 상태였다.

문제는 출마 선언 시기가 언제냐는 것이다. 참모진의 다수는 "추석 전에는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鄭의원의 속사정을 잘 아는 다른 측근은 "출마 선언은 반드시 하겠지만 시기는 추석 후가 될지 모른다"고 여운을 뒀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여러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추석 연휴는 수천만명이 이동하면서 전국적으로 대선 후보들에 대한 정치 여론이 집중적으로 형성되는 시기다. 따라서 鄭의원 측은 그동안 10~12일 출마 선언을 한 뒤 독자적으로 신당 만들기에 나설 것이라는 점을 기정사실로 얘기해 왔다. 추석 전에 매듭짓겠다는 태도였다. 鄭의원도 지난주 "정당을 하려면 법에 따라 지구당을 23개 이상 만들어야 하는 등의 문제가 있어 시간 조절을 할 여유가 없다"고 말했었다.

'수해 때문'이라는 鄭의원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다.

정치권에선 '정몽준 신당'에 차질이 생긴 게 아니냐는 추측이 많이 제기됐다. 민주당내 반(反)노무현 세력의 탈당 가능성이 작아지면서 '정몽준 신당'에 합류할 현역 국회의원들의 숫자가 쪼그라든 게 鄭의원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출마 선언을 한 뒤 그에게 쏟아질 한나라당·민주당·언론 등의 험난한 후보 검증을 돌파할 준비가 아직 덜 됐기 때문이란 얘기도 나왔다. 이와 관련해,이회창(李會昌)·노무현(盧武鉉)후보 주변에서는 "최근 鄭의원을 둘러싸고 정치적으로 '상당한 의혹'이 포착됐다"는 말이 흘러 나오고 있다. 鄭의원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은 여론이기에 이미지 손상은 그에게 큰 상처가 된다. 현대그룹 鄭씨 가문 형제들의 동의를 이끌어 내는 데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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