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1인 1억 투자 …‘한국 스티브 잡스’ 키울 대학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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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만드는 것을 만드는 방법’.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이 지난해 개설해 인기를 끈 강의 제목이다. MIT 미디어랩에선 학생들의 막힘 없고 자율적인 아이디어를 중시한다. 그 결과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던 것처럼 가상스크린을 손으로 터치해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의 기계가 개발됐다. 또 100달러(약 12만원)짜리 컴퓨터도 현실화됐다.

이처럼 독특하고 창의적인 방식을 벤치마킹해 국내 정보기술(IT) 개발을 이끌 ‘한국판 MIT 미디어랩’이 곧 국내에 선을 보인다. 올해 중 우선 한 곳을 선정하는 이 사업에 서울대 등 국내 주요 5개 대학이 뛰어들어 경쟁도 치열하다.

25일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지난 5일 ‘한국판 MIT 미디어랩’ 사업의 참가 신청을 마감한 결과 서울대·연세대·고려대·KAIST·POSTECH이 신청해 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최종 결과는 8월 말 발표될 예정이다.

이 사업은 지경부가 올해 한 개 대학을 선정, IT 개발을 위해 매년 50억원씩 10년간 지원하는 대형 사업이다. 또 선정되는 대학에는 협약을 맺은 민간기업에서 연간 120억원씩을 지원하기로 해 한 해 지원 규모는 총 170억원에 달한다. 내년에는 한 곳을 추가 지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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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MIT 미디어랩이 운영하는 연간 예산(3000만 달러)의 절반 수준에 육박한다. 학생 1인당 연구비와 생활비·학비 명목으로 연 1억원씩이 지원돼 마음껏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된다. 교과부 관계자는 “대학 전체가 아닌 대학 내 한 연구소에 지원하는 수준으론 유례가 없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5개 대학들은 준비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서울대는 인공지능과 IT 결합을 중점적으로 연구할 첨단 ‘휴먼 IT 연구소’를 설립했다. 강태진 서울대 공대 학장은 “국내 융복합 퓨전 학문의 모델을 제시한다는 차원에서 만든 연구소”라고 말했다. 고려대는 MIT 미디어랩, IBM 벨랩 등과 협력체계를 구축해 ‘바이오 IT’ 분야를 세계 수준으로 특화하겠다고 밝혔다. 연세대는 IT 분야의 경험이 풍부한 기업인들을 교수로 영입하며 차별화를 시도했다. 삼성 휴대전화인 ‘애니콜’ 신화의 주역인 이기태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표적으로 20일에 특별교수로 임명됐다. KAIST의 이용훈 정보과학기술대학장은 “KAIST는 인문·예술·공학이 융합된 아이디어 상품을 만들어낼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POSTECH은 삼성·SK·LG 등 80여 개 기업체로부터 연구 후원금을 약속 받은 상태다.

선정 대학은 연구활동이 교육시간의 50% 이상을 차지하도록 교과과정을 설계하게 된다. 또 2011학년도 학부 신입생 20명을 무시험 전형으로 뽑는 특권도 주어진다. 지경부 양병내 정보통신산업과장은 “한국판 MIT 미디어랩은 산학협력이 활성화되는 대학교육을 만들어보자는 의미”라며 “MIT가 미디어랩을 성공적으로 키워내는 데 10년이 걸렸지만 한국은 우수한 자원을 바탕으로 금방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원진 기자

◆MIT 미디어랩=1985년 미디어학자 네그로폰테와 인공지능(AI)의 창시자 민스키에 의해 설립된 미디어·디지털분야 연구기관. 정보기술(IT)을 일상과 어떻게 접목시킬지 연구해왔다.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나누는 분위기 때문에 ‘상상력 발전소’ ‘꿈의 연구실’ 등의 별칭이 따라다닌다. 전자종이, 입는 컴퓨터 등 ‘생각하는 사물’이라는 개념을 전 세계로 확장시켰다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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