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농 CEO ⑧] 소 50마리 인공수정 통해 150마리로 늘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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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출연 씨

"제가 실습나갔던 곳이 전남 영암에서 600두를 기르는 큰 농장인데, 농장주가 그러시더군요. 네가 목표하는 수준까지는 소를 돈으로 보지 말라고요. 기초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으면 쉽게 무너집니다. 1,2년 하고 말게 아니라 평생할 직업인데, 섣불리하면 안돼죠."

경기도 안성에서 한우를 기르는 이출연(26)씨의 말이다. 2001년 학교를 졸업하기 전부터 일을 시작한 그는 올해에야 본격적으로 시장에 소를 내놓을 계획이다. 한우의 경우 생후 24개월 안팎이면 시장에 내놓기 충분하지만, 그동안 이씨는 졸업 전 세운 계획대로 5년에 걸쳐 사육 두수를 일정 규모까지 키우는 작업에 몰두해왔다.

"지금은 소값이 그런대로 괜찮다고 해도 시장이 개방되면 될수록 어중간한 품질로는 살아남기 힘듭니다. 좋은 품질이 아니고는 어렵죠. 홀스타인은 한우보다 성장속도가 빨라도 가격등락폭이 훨씬 심하거든요. 한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가 없더라구요."

이씨는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보다 집에서 하던 일을 물려받는 것이 훨씬 전망있겠다"는 생각으로 농업을 선택했다. 농고와 농업전문학교에서 모두 축산학을 전공한 그는 우선 아버지가 기르던 홀스타인 30두를 한우로 바꾸기 시작했다. 대학 3학년 때 구입한 송아지 50마리를 인공수정을 통해 번식을 시켜 현재의 150마리에 이르렀다. 암소는 새끼를 잘 낳고 유량이 풍부한 것으로, 수소는 성장 속도와 초음파 검사 등을 통해 판별한 육질을 위주로 판단해 우수한 소는 기르고, 일부는 팔면서 선별과정을 거듭해온 것이다.

이런 방식은 초기 투자비용을 회수하기까지 시간이 늘어나는 것이 단점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육질개선 뿐 아니라 비용절감 효과도 크다는 설명이다. '밑우'라고 부르는 송아지 한 마리를 사려면 최소 200여만원을 줘야 하는데, 인공수정에 드는 비용은 건당 2만원 안팎에 불과하고, 이후 사료값도 마리당 120만원 정도 된다는 계산이다. 비싼 값에 송아지를 사서 키웠다가 소값이 폭락하면 사료값도 못 건지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생육과정을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부루셀라같은 치명적인 병으로 농장이 대규모 피해를 입는 것도 막을 수 있다.

마을 어른들은 '인공수정을 하면 송아지가 너무 크게 나와서 힘들다'고들 했지만, 이씨는 어미 소의 사료량을 조절하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번식목적으로 기르는 소는 사료를 너무 많이 주면 오히려 수태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사료값은 과거보다 적게 들어갔다. 사료값으로만 과거 1억원대였던 부채규모가 절반정도로 줄었다. 이씨는 "송아지만 잘 키워내면 소값이 어느 정도 떨어지더라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처음에는 바로 그 송아지 잘 키우기가 쉽지 않았다. "송아지 처음 나올 때는 정말 정신이 없었어요. 새벽 세 시까지 내내 자리를 지켰죠. 지금이야 상태를 보면 대략 어느 정도 기다려야 할 지 어림을 하지만. 탯줄을 너무 짧게 자르면 염증이 생기기 쉽거든요. 그런 처치도 배워가고요. "갓 태어난 송아지가 숨을 쉴 수 있도록 입안에 고인 양수를 비워주는 일도 처음에는 공기를 불어넣는 요령을 몰라서 무조건 입으로 직접 빨아냈다. 그러면서 들이마신 양수도 적지 않았다.

재작년인가는 1월에 태어난 송아지 세 마리가 일주일만에 폐사하는 일도 겪었다. 너무나 허무했다. 어른소와 달리 추위에 약한 송아지를 각별히 배려하지 못한 탓이었다. 이제는 주변 농가의 소들에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불려가기도 하는 수준이 됐지만 이씨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라고 했다.

"농협같은데서 강좌가 있으면 꼭 가요. 학교 때는 기본이 안된 상태에서 배우니까 이론을 다 이해하지 못했었거든요. 그런 자리에는 전국각지에서 모이니까 시세전망같은 정보도 들을 수 있죠." 이씨는 이처럼'배우는 자세'를 포함, 세 가지를 농사일에 중요한 항목으로 꼽았다. "기록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번식이나 수정 시기, 혈통같은 걸 적어놓지 않으면 관리가 안돼죠. 출산 후 40일 정도 지나면 수정에 최적기인데, 저도 처음에는 까먹고 6개월씩 내버려두기도 해서 집에서 꾸지람을 많이 들었죠. 무엇보다도 농사는 절대 혼자 못합니다. 시작하려면 주위에 발을 넓히는 게 급선무에요. "

이씨의 경우 인근에서 같은 일을 하는 농업학교 동창 두 명이 큰 의지가 된다. 최근에도 볏집을 묶는 농기계같은 비싼 설비를 공동으로 구입했고, 그 중 낙농을 하는 한 친구에게서는 유제품으로 쓰지 않는 초유를 얻어다 송아지 먹이로도 쓴다. 이씨의 형도 최근 식육처리기능사 자격증을 따 동생과 힘을 합칠 준비중이다. 직판장을 통해 양질의 고기를 직접 소비자에게 공급하겠다는 것이 이씨의 구상이다.

안성=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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