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많은 경제특구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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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주춤거리기는 하지만 이미 경제대국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일본. 엄청난 잠재력을 갖고 고속 성장대로를 질주하는 중국. 이 두나라 사이에 끼여 새로운 활로와 위상을 찾아 고민하던 한국이 궁리해낸 것이 '동북아 비즈니스 중심국가'라는 아이디어이고 그것을 실현하겠다고 정부가 마련한 구체적인 방안이 경제특구 제도다.

정부의 구상은 우리나라가 동북아 경제권의 물류 기업 금융의 중심지로 발전할 수 있도록 영종도, 송도 신도시, 김포 매립지, 부산신항, 광양항의 5개 지역을 경제특구로 지정하고 이곳에 입주하는 외국기업에 특혜를 부여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에는 근로기준법 등 여러법률의 일부 조항들을 적용 배제하는 등 규제를 대폭 완화해주고 세금을 감면해줄 뿐 아니라 거주 외국인들의 생활 환경을 개선해주기 위해 주거단지의 조성과 특별분양, 외국자본에 의한 병원 및 약국의 설립허용, 국제고등학교 설립 등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방안은 여러측면에서 비판과 반발을 불러왔다. 먼저 총론면에서의 원칙론자들은 비즈니스 중심국가를 하겠다면 나라 전체를 대상으로 제도와 관행을 획기적으로 바꿔야지 일부지역에만 국한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비판한다. 특구란 중국이나 북한 같은 후진 사회주의국가에서 체제 붕괴의 위험 없이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려고 시도하는 부분 개방정책인데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인 한국이 그것을 답습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각론에 들어가면 이해집단들의 반발이 거세다. 먼저 노동계에서는 특구에 대한 근로기준법 일부조항의 적용배제를 두고 "노동기본권을 말살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총파업을 통해서라도 저지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한의사협회도 특구 내 외국인 의료 영리법인의 허용과 외국인 의사 채용 등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실력행사의 뜻까지 내비치고 있다. 역차별의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국내기업이나 이미 들어와 있는 외국기업들은 계속해서 노사분규, 각종 규제, 높은 세금, 고비용체제에 시달리며 사업해야 하느냐는 항변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정부 시안의 내용이 산만한데다 지금이 정권 말기여서 경제특구제도가 제대로 추진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이들도 많다.

이러한 비판을 감안해서 정부는 좀 더 현실성 있는 추진전략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먼저 경제특구제도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추진해 나가되 국내의 일반 경영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노력도 병행돼야 하겠다는 것이다. 중앙일보 경제연구소가 외국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이들이 경영상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이 노사관계와 정부규제다. 물론 국내기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불법 파업만큼은 제대로 막아주고 각종 규제를 풀면서 세금을 낮춰간다면 외국인 투자유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준비를 하고 나면 특구에 대한 상대적 특혜와 그에 관한 시시비비도 그만큼 줄어들게 돼 일의 추진이 수월해질 것이다.

또한 경제특구의 선정과 부여하는 혜택은 집중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투자재원이 한정돼 있는데 다섯군데나 특구를 잡아 동시에 추진한다면 무리가 따르게 마련이다. 한군데라도 가능성이 큰 곳부터 시작해 일단 성공한 후에 확대를 하거나 추가지정해 가는 전략이 올바른 수순이라 하겠다. 특구에 대한 혜택도 가짓수만 늘리는 것 보다 노사·규제·세금의 세가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개선해 간다면 국내 이익집단의 반발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외국기업들에 보다 깊은 인상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중국의 발빠른 추격을 본다면 지금은 정부가 특구든 아니든 간에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마련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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