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12만 일본계 미국인 강제수용’은 루스벨트의 뼈아픈 실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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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대통령의 오판
토마스 J 프라우프웰·
M 윌리엄 펠프스 지음
채은진 옮김, 말글빛냄
433쪽, 2만9000원

좀 박절하게 말하자면, 일급 저술은 못 된다. 무게감이나 해석의 참신함에서 책 보는 이를 압도하는 그 무엇이 아쉽다. 그러나 눈여겨 볼 읽을거리라는 판단에는 변함없다. 안정된 미국정치 풍토를 반영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누구 말대로 미국인에게 대통령 이야기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이라서 그만큼 널리 회자되고 음미된다. 이런 탄력적인 치적 평가를 등에 업고 등장한 이 책의 내용은 조지 워싱턴에서 조지 W 부시에 이르는 미국 역대 대통령의 정책실패 사례연구 20꼭지.

이를 통해 그때 최고 권력자의 잘못된 선택이 어떻게 재앙을 낳았는지를 묻는데, 포인트는 두 가지다. 우선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는 일은 전무하다. 역사학자·저널리스트가 함께 쓴 이 책은 ‘역사의 잣대’에 충실하다. 머리말대로 시간의 먼지가 가라앉아 시야가 확보된 지금 역대 대통령의 공과를 심사해보자는 시도다. 로마 가톨릭에서 성인(聖人) 심사를 사후 50년 이후에 하듯 이 책 또한 그렇다. 거물들의 타계 직후 일어나는 일시적이고 정서적인 과잉 반응과는 달라야 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또 다른 감상 포인트는 특정인에 대한 비난·찬양이 아니라 ‘평가’라는 점이다. 정책 실패 당시의 상황에 대한 섬세한 복기(復棋)가 먼저다. 그런 결정(대부분이 오판이다)을 내렸던 권력자의 선택과 심리적 동기 점검이 중요하다. 미국 근·현대사의 사례연구이지만, 우리 상황에 맞춰 읽기에 큰 무리가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또 하나, 이 책의 글쓰기 방식이 흥미롭다. 각 사례연구에는 드라이한 백과사전식 정보 압축이 없다. 매 꼭지는 차라리 문학적 내러티브(이야기)에 충실하기 때문에 뉘앙스 포착에 강하다. 영미권 양질의 책들이 갖는 특징이다.

첫 사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독립전쟁 직후 지역정부의 부채 청산을 위해 위스키에 세금을 물리기로 결정했다. 재정확보를 위한 과세는 뜻밖에도 납세저항 즉 폭동으로 연결됐다. 그게 무려 3년을 끌었다. 이에 대응한 정부의 무력행사 역시 가혹했다. 그 결과 엄청난 인기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쓸쓸하게 퇴장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연방주의의 대추락, 주 정부의 이상 비대라는 기현상이 60년 동안 이어졌다. 지역주의 편승한 남북전쟁의 발생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게 이 책의 평가다.

1838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인디언 추방법 제정에 따른 비극, 1916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멕시코 토벌이라는 무리수 등 사례연구에 이어 관심이 가는 게 일본계 이민자 12만 명에 대한 인권유린 사건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루스벨트 정부가 일본계 미국인들을 강제수용소에 억류했던 일은 미국 역사상 최고의 치부 중 하나다. 한 일본계 소녀가 강제수용소로 향하는 수송트럭 옆에서 맥놓고 있는 모습. [말글빛냄 제공]

진주만 침공을 받은 1942년 초 루스벨트는 엄연히 미국시민인 일본 이민자들을 10개 포로수용소에 강제로 수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간첩행위를 했거나, 할 것이라는 혐의 또는 우려 때문인데, 강제수용 시행에 10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전격적이었는데, 국가폭력 아래 자행된 인권 유린이자, 재산권 박탈이 분명했다. 훗날 간첩혐의도 입증된 게 없었으니 더욱 그랬다. 이와 관련 76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공식 사과를 해야 했는데, 그 일은 지금도 미국사의 치부다. 존 F. 케네디의 쿠바 피그스 만 침공도 도마에 오른다. 카스트로 제거를 위한 이 작전은 미온적 작전 때문에 대실패로 끝나면서 거꾸로 독재자 권력을 키워주는 결과를 낳았다. 케네디가 쿠바 미사일 위기를 잘 대처했다지만 피그스 만 침공 실패가 없었더라면 미사일 위기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이밖에 닉슨의 워터게이트 도청사건, 조지 W 부시의 무리한 이라크 침공도 다뤄지는데, 이라크 침공에 비판적이지만 재평가의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 닉슨에 대한 평가은 엄정 중립 쪽이다. 워터게이트 오명에도 불구하고 역사 속의 닉슨 평가는 상승세라는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의 정책실패 사례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그의 부끄러운 섹스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그게 미국의 정치와 국익에 심각한 손상은 아니었다고 언급한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극적인 재평가의 케이스는 트루먼. 1953년 그가 백악관을 떠날 때 지지율은 22%, 바닥에 가까웠다. 뒤를 이은 아이젠하워도 그를 찬밥 취급했다. 하지만 지금 그를 “루스벨트의 불운한 후임자”라고 비웃는 이는 없다. 신념을 위해 싸운 시민이자,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라는 평가가 대세다.

그렇다면 한국사회는? 건국 이후 등장한 열 명의 역대 대통령(2공화국 총리·대통령 포함)에 대한 포폄(褒貶)은 아직도 원활하지 않다. 외려 백안시하는 경우가 잦다. 그만큼 경직된 게 한국사회인데, 그게 바로 이 책을 새삼 정독해야 하는 이유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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