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性행위 수수께끼 진화생물학적으로 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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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최근 서울 여성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외모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70%나 됐으며 대부분 얼굴이 예쁜 여자보다 몸매가 좋은 여자를 더 부러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여자들이 개미허리의 날씬한 몸매를 선호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왜냐하면 남자들이 모래시계 모양의 몸을 성적으로 선택하도록 진화됐기 때문이다.

영국의 과학 저술가인 매트 리들리는 35세 때인 1993년에 펴낸 그의 출세작에서 미국 심리학자인 데벤드라 싱의 이론을 빌려 큰 엉덩이에 잘록한 허리를 가진 여자가 생식능력이 우수하므로 사내들이 개미허리의 여체를 탐닉하게 됐다고 풀이했다.

이 책에는 이처럼 사람의 성행동을 진화생물학과 동물행동학의 시각에서 분석한 사례가 집대성돼 있다.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인간의 성이 진화한 과정을 탐사한 저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문장의 주어는 암컷과 수컷이며 둘 사이를 관계짓는 용어는 짝짓기일 수밖에 없다. 지느러미발도요새, 밑들이벌레 따위의 짝짓기와 함께 사람의 성생활이 한 묶음으로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가령 남편들의 간통을 따오기나 참새의 교미행위에 빗대어 설명(2백97쪽)하고, 진디나 윤충의 번식활동을 통해 성의 기원을 추적(87쪽)한다.

리들리가 이 세상 온갖 동물의 교미행동을 미주알고주알 묘사하는 까닭은 자명하다. 인간은 하등동물로부터 진화했으며 인간의 성행동과 하등동물의 교미 사이에는 공통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헝겊 조각들을 연결해 조각보를 만드는 일"처럼 수많은 이론을 총망라해 인간의 성에 관한 수수께끼를 풀어헤치고 있다. 붉은 여왕은 영국 동화작가 루이스 캐럴의 『거울 속의 세계』에서 앨리스 소녀와 함께 나오는 레드퀸이다.

하나나 셋이 아니고 하필이면 암수 한 쌍의 성이 존재하는 곡절에 대해서도 그럴 법한 이론이 소개된다. 아무래도 이 책의 무게 중심은 암수가 짝짓기 상대를 선택하는 메커니즘의 탐색에 두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공작새의 화려한 꼬리, 일부다처제와 남자의 본성, 일부일처제와 여자의 본성, 아름다움의 쓰임새 등이 예리하고 명쾌한 논리로 분석돼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적지 않은 독자들은 동물의 짝짓기를 곧바로 인간의 성행동에 연결시키는 논리 전개에 당혹감을 느낄 개연성이 많다.

왜냐하면 인간의 행동이 본능과 환경 중에서 어느 쪽에 의해 결정되는지를 따지는 이른바 선천-후천 논쟁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저자 역시 이러한 지적을 미리서 감안한 듯이 "인간의 이야기와 동물의 이야기를 마구 섞어가면서 다룬 것에 대해 변명할 생각이 없다"고 밝히면서 진화심리학의 주제를 말미에서 다루었다.

국내에 이미 소개된 데이비드 부스의 『욕망의 진화』(94), 낸시 엣코프의 『미인생존』(99)을 연상시키는 이론이 빈번히 등장한다. 아마도 리들리는 자신의 역작이 구닥다리 학문으로 추락한 사회생물학의 도서로 분류될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책의 끝 부분에서 리들리는 "이 책에 나오는 이론의 절반 정도가 어쩌면 틀린 것인지도 모른다"고 털어 놓았다. 바로 이 대목에서 눈 밝은 독자들은 『덕의 기원』(96), 『게놈』(99)으로 국제적 명성을 획득한 리들리의 진가를 발견하게 된다. 얼마나 겸허하고 열린 지식인의 마음가짐인가.

근래 잡다한 낡은 지식을 긁어모은 과학책을 펴내는 국내 일부 필자들은 옮긴이의 지적처럼 "훌륭한 과학서적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그 방법을 제시"한 이 책 앞에서 한번쯤 심호흡을 해볼 필요가 있겠다. 끝으로 지난 달 펴낸 졸저 『성과학탐사』를 집필하면서 이 책에 신세졌음을 밝혀두고 싶다.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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