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기술로 첨단 음향을 입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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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디지털 입체음향 기술 벤처기업인 ㈜이머시스의 김풍민 사장은 대덕밸리 내 연구원들 사이에서 '딴따라'로 통한다. 김사장이 사업상 만나는 사람들이 주로 영화·가요·게임 등 엔터테인먼트 업계 관계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찾는 곳은 대전 엑스포공원 내 첨단영상산업단지 1층에 있는 이머시스의 입체음향 스튜디오. 국내 최초로 만들어진, 전후좌우는 물론 상하 방향의 실감나는 입체음향을 영상(콘텐츠)과 함께 편집하는 곳이다.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은 이곳에서 이머시스의 첨단 입체음향 기술을 영화 혹은 음반에 접목하려고 줄을 서 있다. 얼마 전만 해도 웬만한 디지털 영화음악이나 뮤직비디오를 만들려면 미국이나 일본의 음악스튜디오를 찾던 것과 판이하게 달라진 모습이다.

김사장은 "최근 들어 입체 음향은 영화·음악은 물론 게임의 도입부, 인터넷의 배경음악 등에까지 사용되면서 엔터인먼트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필수 요소가 됐다"고 말했다.

특히 이 회사가 개발한 입체음향 제작 솔루션인 '메이븐3D 프로'는 돌비사와 공동으로 개발돼, 그동안 영화를 한편 상영할 때마다 영화관이 돌비사에 의무적으로 7백만원씩 주던 로열티를 절반으로 줄이는 데 기여했다. 이 솔루션은 카피당 3백만원씩 1천카피가 연내 일본에 수출될 전망이다.

대전 대덕밸리가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산업 기지로 발돋움하고 있다. 영화감독 박철수씨는 "대전이 영화산업, 특히 첨단 정보기술(IT)로 무장된 디지털 영화 산업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속속 갖춰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대덕밸리의 입지와 조건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엑스포공원에 있는 시네마파크와 사운드파크는 언제든지 스튜디오로 활용할 수 있다.

또 국가로부터 첨단 영상산업단지로 지정된 데다 대전시의 전폭적인 지원도 받고 있다. 대전시는 올해부터 2006년까지 총 5백14억원을 들여 엑스포과학공원 북쪽 일대를 첨단문화산업단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에 따라 공원 내에 국내 3개 영화사(박철수필름·양산박·신승수프로덕션)를 유치해 놓았다.

지난달 26일에는 대전영상원도 오픈했다. 3백억원 규모의 영화투자조합 결성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를 통해 첨단 컴퓨터그래픽과 디지털음향이 접목된 영화들을 양산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엔터테인먼트산업에 적용할 첨단 IT를 대덕밸리에서 쉽게 공급받을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첨단 가상현실·음향·애니메이션·컴퓨터그래픽·게임 관련 기술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필요한 기술은 모두 개발되고 있다.

아직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주로 공급되고 있지만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성장 여부에 따라 한국과학기술원의 가상현실기술, 국방과학연구소의 시뮬레이션기술 등도 언제든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방향을 틀 수 있다.

특히 ETRI의 의지가 크다. ETRI 오길록 원장은 "실리콘밸리가 첨단 IT로 할리우드를 지원하듯이 대덕밸리도 국내 엔터테인먼트산업에 기여할 준비가 돼 있다"며 "업체들이 원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것은 물론 이런 기술을 지닌 벤처기업이 창업하는 데도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머시스도 ETRI가 개발한 입체음향 기술을 전수받아 창업한 벤처회사다. 가상현실 벤처기업 가시오페아도 마찬가지.

이 회사 박찬종 사장은 최근 가상현실 기법을 이용한 '사이런'을 개발하고 스포엔터테인먼트(스포츠+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추진 중이다. '사이런'은 일종의 사이버 마라톤 기계로,일반적인 러닝머신에 3D 가상현실로 구현된 환경을 조성해 운동하는 사람이 마라톤코스를 실제로 뛰는 듯한 환경을 조성해 준다.

박사장은 "이밖에 가상현실에 쓰이는 첨단 모션캡처 기술을 이용해 만든 디지털 입체 애니메이션을 매주 방송국에 공급하고 있다"며 "자금력만 있다면 미국의 픽사 같은 디지털 애니메이션 제작도 꿈만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ETRI의 엔터테인먼트 관련 기술 생산기지는 가상현실(VR)연구부가 주도하고 있다.

이 연구부 김현빈 부장은 "엔터테인먼트 분야 기술개발에 63명이나 되는 연구원이 몰려 있는 연구소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며 "문제는 기술과 산업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결합하느냐"라고 말했다.

이제 막 싹을 틔우고 있는 대덕밸리의 엔터테인먼트 기술-. 관계자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술과 산업이 같이 성숙하도록 인력과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덕=하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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