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의 체벌금지 지침 2~3시간 만에 급조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2학기부터 모든 학교에서 체벌을 전면 금지한다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방침이 2~3시간 만에 급조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당초 발표 당일 오전까지 없던 계획이 갑자기 발표됐다는 것이다. 또 현행 법률과의 충돌 여부에 대한 검토 없이 방침부터 발표했다. 이 때문에 곽 교육감의 성급한 방침 결정이 교육현장에 혼란을 야기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21일 시교육청 관계자에 따르면 19일 오후 발표된 체벌 전면 금지 방침은 당일 오전까지만 해도 계획에 없었다. 이날 오전 간부회의에서 담당 국장은 최근의 교사 폭력 문제와 관련, “진보·보수 양쪽을 포함하는 교사·학부모단체협의체를 만들어 교사 폭력과 학생들의 대들기 문제를 논의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자”는 수준의 의견을 냈다고 한다.

곽 교육감이 호응하면서 이 내용을 발표키로 했다. 오후 2시쯤 담당부서에서 작성한 보도자료안이 교육감 비서실에 전달됐다. 그런데 오후 4시쯤 ‘체벌 전면금지’ 방침이 더해져 내려왔다는 것이다. 비서실 관계자는 “곽 교육감이 체벌 전면금지를 포함시키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학교현장에 큰 파장을 몰고 올 정책이 교육청 내부에서도 충분한 검토와 논의 없이 급하게 결정된 순간이었다. 이 같은 정책 급조에 대한 일선 교사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현재도 학교에 학교폭력자치위원회 등이 있지만 규칙이나 결정에 구속력이 없어 학생과 학부모가 신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현실이 이런데도 체벌 전면금지부터 들고 나오니 혼란스러운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국교총이 19일부터 3일간 전국 교원(전문직 포함) 432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82.1%가 해당 정책을 반대했다. 곽 교육감의 방침이 ‘교육적 선택’이라고 본 교원은 15.5%인 반면 ‘인기영합주의적 선택’이라는 응답이 80.3%나 됐다. “학생생활지도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가뜩이나 흔들리는 학교의 질서와 기강이 더욱 무너질 것”이라는 응답은 90% 이상이었다.

◆현행 법령과 충돌 논란=곽 교육감의 방침이 교육적 체벌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현행 초중등교육법 등과 충돌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초중등교육법 제18조는 ‘학교의 장은 교육상 필요한 때에 법령·학칙이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징계하거나 기타의 방법으로 지도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같은 법 시행령 31조도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교총 김동석 대변인은 “법령상 ‘기타의 방법’과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에 대한 학칙을 각 학교가 운용 중인데, 일률적으로 전면 금지하라고 하면 법령과 마찰이 일고 교장의 권한도 침해하게 된다”고 말했다.

교과부도 일선 교육청이 체벌과 두발규제 등을 전면 금지하는 것이 법률 위반에 해당하는지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법리적으로 해석하면 체벌 전면금지가 현행 법률과 충돌할 소지가 있다”며 “공식 입장은 법률 자문을 거쳐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곽 교육감은 법리 논란에 대해 “원칙과 방향은 체벌 전면금지”라면서도 “현행 법령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은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의 구체적인 범위와 점검 방법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김성탁·박수련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