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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라운지] 비행기 타이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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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해 6월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행사에 참석할 북측 대표단을 태우고 인천공항에 온 고려항공 비행기를 본 항공정비사들이 혀를 찼다. 타이어가 반질반질하다 못해 윤이 났기 때문이다.

자동차도 심하게 닳은 타이어를 그대로 쓰면 차체가 흔들린다. 심할 경우 핸들 조작이 마음대로 안 된다. 하물며 활주로에서 시속 420㎞의 속도로 달리고 바퀴 하나에 21t의 무게가 실리는 항공기는 말할 것도 없다. 항공기 타이어가 심하게 닳으면 이착륙 때 방향성을 유지하기 힘들고, 자칫하면 활주로를 벗어날 가능성도 있다. 코너를 돌거나 설 때도 낭패를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항공기 타이어는 보통 2~3개월을 사용하면 교체한다. 약 250회 정도 착륙했을 시점이다.

북한은 이렇게 중요한 타이어를 왜 안 간 것일까. 항공사 관계자들은 "이유는 단 하나"라고 얘기한다. 돈 때문이다.

항공기 타이어 하나의 가격은 150만원 안팎. 고려항공의 러시아제 일루신기는 앞에 2개, 뒤에 4개 등 모두 6개의 타이어를 장착한다. 타이어 전체를 한번 갈면 900만원이 든다. 경우에 따라선 알루미늄 휠을 교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휠 가격은 개당 1300만~1500만원.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으로선 작지 않은 부담이다.

타이어 홈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비행기는 캄보디아 등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타이어가 국가경제력을 대변하는 셈이다.

우리나라도 1980년대 초까지는 항공기 타이어를 마르고 닳도록 썼다. 비만 오면 활주로에서 미끄러지는 사고가 비일비재했다. 당시 공항 출입기자들이 사소한 사고는 보도하지 않기로 자제 선언까지 했을 정도다. 국민이 불필요한 두려움을 가질까봐서다.

올해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타이어 홈이 선명한 고려항공기로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에 왔으면 한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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