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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었다 기죽지말고 "네멋대로 즐겨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유쾌·상쾌·통쾌'라는 한 광고카피는 이제 우리 시대의 키워드로 올라선 느낌이다. 광고가 '대중 사회의 시(詩)'로 기능하는 이 시대 그 카피의 경우 '꼰대들'처럼 지루하게 살고 싶지 않다는 젊은 세대의 잠재적 욕구를 자극하는데 성공한 경우다. 따라서 다매체 다채널의 이 시대 책이란 미디어도 때론 유쾌·상쾌·통쾌한 쪽으로 변신할 의무가 있는데, 오늘 주제가 그렇다. 쿨하다 못해 맹랑하기까지 한 책, 그러나 경박하지 않다. 따라서 엄숙주의 엘리티즘의 책 개념과 달리 '삶과 놀아주는 읽을거리'라는 새 컨셉트다.

유감스럽게도 문제의 그 책은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고 굳게 믿는 동료 기자가 '몰래 대출'해가는 바람에 소개가 미뤄졌다. 물론 반납했지만, 그건 마감 뒤였다. 팀 회의 때도 한번 다루자는 말이 나왔다가 지난 주 '행복한 책읽기'광고에 척하니 등장해 허를 찔렸다. 한데 책광고 속의 유명인사들의 촌평(寸評)부터 궁금증을 자극했다. 소설가 최인호, 가수 조영남 등의 말은 이랬다. "14번 법칙이 정곡을 찔렀다" "나는 3,11,49번 법칙이 마음에 든다. 한두가지만 건져도 본전은 뽑는다".

어리둥절하시다고? 문제의 책은 『유쾌하게 나이드는 법 58』(나무생각)이다. 타임 에세이스트 출신의 영문학 교수라는 로저 로젠블라트의 이 책 원저는 'Rules for Aging'. 그러나 '유쾌하게 세상을 사는 법'이란 말로 바꿔도 문제없다. 도회지 정글의 세상에 지치고 상처입은 나를 다독여주는가 하면, 그 반대로 "당신의 마음대로 살아라"고 부추기기도 한다. 즉 해석의 여백이 많고, 기본적으로 21세기 미국 버전의 이 처세론은 고급스럽다.

이를테면 58개 법칙을 짧은 설명과 함께 담은 이 책의 앞머리 법칙부터 장난이 아니다. 다짜고짜 가슴을 후비고 들어온다. 1법칙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편부터 그렇다. "때가 일러서, 혹은 늦어서 괴로운가? 그 말을 했기 때문에 또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인가? 당신의 직장상사나 여자친구가 당신을 형편없는 사람으로 보기 때문에? 그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건 선가(禪家)에서 말하는 깨침을 연상시키는 말이다. 깨침이란 고정관념, 즉 얽히고 설킨 기존 정보들과의 돌연한 단절선언이 아니던가.

그건 2법칙과 함께 읽어야 제맛이다. 법칙 제목은 '당신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도 안다. 당신은 어제의 친구들이 적으로 변해간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단골가게 주인, 시누이, 당신의 개마저 당신이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장담컨대 당신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은 사실은 없다. 그들은 자신만을 생각하고 있다. 당신이 자신만을 생각하듯이."

세상의 쓴맛 단맛 다 본 이 고수(高手)는 '당신을 지겹게 하는 사람은 바로 당신'(8법칙)이고 '거창하기 짝이 없는 말들이 들리면 당장 도망가라'(22법칙)고 냉소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조언을 한다.

하지만 넌지시 찔러주는 정반대 쪽의 충고로 균형을 잡는다. 그게 영 헷갈리면서도 이 책의 진면목이 아닐까 싶다. 이를테면 '적(敵)은 무시하라. 아니면 확실하게 죽여버려라'(4법칙), '속도를 늦추지 말라'(38법칙)야말로 음미해볼만한 영역이다. 무엇보다 이 책을 퇴행적 은둔주의로 볼 수 없게 만드는 힘이다. 즉 경기마다 움츠러들지 않았던 마이클 조던이 쉬 부상을 당하지 않듯이 "이 세상은 당신의 모든 것을 동원해 도전해야만 하는 곳"이기도 하다는 것이 저자의 발언이다.

그렇다. 열린 텍스트라서 소화하는 방식 역시 열려있는 이 책은 내가 보기에 미국보다는 특히 한국사회에 적절할듯 싶다. 주변 시선을 너무 의식하고 살거나, 아니면 '나' 아닌 '아무개의 아빠' '조직의 아랫사람'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는 것, 무엇보다 당신 자신의 '끌림과 꼴림'에 충실하는 것이 성공적인 삶이라는 충고 말이다. 글쎄다. 노장(莊)이라면 이런 의뭉스런 말로 우리들을 어리둥절하게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저자가 때로는 '마키아벨리적인 발톱'마저 은근히 드러내는 전투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건 어차피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 그러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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