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평양대회 의식 돌출행동 서로 자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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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8·15 민족통일대회=남북 민간단체 소속 회원들이 광복절을 맞아 함께 모여 하는 통일운동 행사로 지난해 평양 행사(민족통일대축전)에 이어 두번째다. 행사 주체는 남측은 직능단체 등 2백여개 단체로 구성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7대 종단·전국연합 등 40개 단체로 구성된 통일연대이며, 북측은 민족화해협의회다.

튀는 행동도, 이상한 구호도 없었다. 행사를 반대하는 장외시위도 눈에 띄지 않았다. 15일 서울 쉐라톤 워커힐 호텔에서 개막된 남북 민간차원의 8·15 민족통일대회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순항하고 있다. 행사진행·합의사항 등을 둘러싼 남북 대표간의 승강이는 있었지만 참석자들은 남북 민간차원의 화해·협력 새 길을 열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북측 대표단은 예정보다 1시간여 늦게 차량을 이용해 8·15행사 개막식장인 워커힐 호텔 제이드 가든에 도착했다. 북한 노래 '반갑습니다'와 '경의선 타고' 등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북측 대표단이 입장하자 기다리던 남측 대표단은 박수로 맞았다. 김영대 북측단장은 이돈명 남측단장, 한광옥 민주당 최고위원의 손을 꼭 잡은 채 입장했고, 뒤이어 북측 대표들이 한반도기를 흔들며 행사장으로 들어섰다.

개막식은 허혁필 북측 민족화해협의회 부회장의 개막선언, 대형 한반도기 게양, 남북 대표의 개막 연설, 공동호소문 채택으로 이어졌다.

○…개막식 네번째 연사로 나선 김명철 농근맹부위원장은 남측의 월드컵 선전(善戰)과 '주적' 문제를 거론해 눈길을 끌었다.

김부위원장은 "우리 민족이 36년 전 런던축구대회에서 자랑을 떨친 데 이어 이번 세계축구선수권대회(월드컵)에서도 민족의 우수성을 과시했다"며 "이것은 민족의 자랑이자 긍지"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곧바로 "만나니 동포이고 혈육인데 주적이 있습니까"라고 말해 우리 정부의 '주적' 개념을 우회적으로 비난했다.

○…남북 참가자들은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지난해 평양 8·15 행사를 의식한 듯 돌출행동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남측 행사본부 관계자들은 참가자들에게 '지혜롭게 행동해줄 것'을 수시로 당부했으며, 공동호소문의 문안 조정·노랫말 개사 등 사소한 부분까지 꼼꼼히 챙겼다.

○…워커힐 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오후 3시30분에 시작될 예정이던 북한 사진전을 둘러싸고 북측 대표단이 한때 철수 움직임을 보여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도 했다.

한 비전향 장기수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을 찍은 사진 전시와 관련,서한 내용이 김위원장 찬양조로 돼 있어 남측 관계당국이 전시에 난색을 표명하자 김영대 북측단장 등은 행사장 입구에서 호텔로비 커피숍으로 철수했다.

그러나 남측 당국이 "문제될 게 없다"는 판단에 따라 이 사진 전시를 허용하면서 사진전은 오후 5시10분쯤 시작됐다.

○…북측 대표단원들은 남한의 새로운 풍물에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큰 관심을 나타냈다. 한 북측 기자는 개막 행사장인 제이드가든 입구에 세워진 이동식 보안검색 장치를 보며 "저게 뭘하는 건데 저렇게 문처럼 만들어 세웠느냐"며 비디오에 담기도 했다.

장재언 종교인협의회장은 호텔 로비에 긴머리의 한 남성이 지나가자 "남잔가 여잔가 구분이 안되네"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워커힐 호텔 내 미술 전시회장에서는 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최성룡 부위원장이 북한 국보급 작품들을 차근차근 설명해 남측 대표들의 이해를 도왔다.

최부위원장은 어린이들이 한반도 모양으로 늘어선 김봉주 작품 '통일렬차 달린다'라는 작품 앞에서 "독도는 원래 여자아이로 그려졌는데 남자아이로 바뀌었다"며 "왜냐하면 여자는 시집가면 끝이니까"라고 말해 주위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고수석·백성호·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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