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이 토정비결 발표하는 시무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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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 4일 서울 압구정동의 한 역술원에서 올해 운세를 보고 있는 로레알코리아 클라우스 파스벤더(左) 사장.[신인섭 기자]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코리아는 오는 7일 오후 2시 서울 코엑스의 대형 연회장에서 전직원이 모여 시무식을 한다. 전문 공연단의 북춤과 사물놀이가 주요 행사. 이 자리에선 랑콤.랄프로렌 등 15개 브랜드별 새해 전략 발표가 곁들여진다. 딱딱하게 전략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더 재미있게 발표하는지 경연을 벌일 계획이다.

지난해 4월 부임한 독일 출신 클라우스 파스벤더 사장은 이 자리에서 올해 토정비결을 발표한다. 그는 이를 위해 4일 서울 압구정동 한 역술원에서 자신과 회사의 올해 운세를 봤다. 이선주 홍보팀장은 "사기를 높이자는 자리니만큼 '운수대통'이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새해 첫 출근날 강당에 모인 직원들을 향해 회장이나 사장이 신년사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국내 기업들의 전통적인 시무식과는 달리 외국 기업의 시무식은 실속 위주다. 직원들 사기를 올리기 위해 잔치를 벌이기도 하고, 호텔에 전 직원이 투숙해 머리를 맞대고 새해 전략을 짜는 것으로 시무식을 대신하기도 한다.

날짜도 신년 첫 출근날이 아니다. 송년회를 꼭 12월 31일에 하지 않듯 적당한 날짜를 잡아서 한다.

제약회사 한국베링거인겔하임은 지난 3일 전직원 앞에서 미샤엘 리히터 사장이 "지난해 실적은 얼마였는데 올해는 얼마를 달성하자"고 간단히 말하는 것으로 시무식을 대신했다. 하지만 직원들이 정작 새해맞이 행사로 여기는 것은 따로 있다. 1박 2일간 여는 새해 전략수립 회의다. 오는 13~14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한다. 시험까지 치른다. 한 달쯤 전에 새해 주력 상품에 대한 자료를 나눠준 뒤 얼마나 익혔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점수를 인사 평가에 반영한다니 직원들은 새해가 두렵다.

제약회사 한국노바티스도 오는 10~11일 인천 하얏트 호텔에서 '워크숍'을 연다.

홍보 전문업체 플레시먼힐러드코리아는 워크숍과 잔치를 겸한다. 오는 7~8일 강원도 원주의 오크밸리 리조트에 모여 회의를 한 뒤 '베스트 드레서''베스트 스마일'등 경연대회를 연다. 즉석 경매 행사도 준비했다. 각자 아끼는 물건을 동료에게 파는 것. 수익금은 불우이웃돕기에 쓴다.

화학회사인 듀폰은 지난 3일 대회의실에 180여 전직원이 모여 차를 마시며 새해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시무식을 대신했다. 제일 중요한 순서는 신입사원 자기소개였다고.

신용카드회사 비자코리아, 항공특송업체 페덱스코리아, 제약업체 한국화이자 등 상당수 외국 기업은 아예 시무식이 없다. 비자코리아 장성빈 부장은 "외국 본사와 마찬가지로 한국 직원들도 연말연시에 휴가를 많이 가 따로 시무식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woongjoo@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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