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風' 어디까지 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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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몽준(鄭夢準)의원은 대선에 나가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한다. 그의 지지자들은 "천시(天時)가 왔고 지리(地利)는 더욱 괜찮다"고 주장한다. 강신옥(姜信玉)전의원은 "월드컵 4강과 국민적 열기는 천운처럼 다가온 정치적 기회"라고 말한다. 민주화투쟁시절 인권변호사로 날렸던 姜전의원은 鄭의원의 테니스 파트너 겸 조언자다. 정치 지형은 민주당 내 반(反)노무현세력이 鄭의원을 한나라당 이회창후보와 맞설수 있는 대안으로 기댈 정도다.

鄭의원은 "나의 인기는 거품이 아니다"고 자신한다. '열정·붉은악마·히딩크·국민적 에너지'라는 월드컵의 파괴력 있는 이미지가 대선까지 정풍(鄭風·정몽준 바람)의 기세를 떠받칠 것이라는 믿음이 엿보인다. 그것을 정치 변화의 열망과 묶으면 지금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할 것이라는 기대다.

정풍은 스포츠와 정치의 절묘한 함수관계가 낳은 작품이다. 스포츠로 대권의 길을 개척해온 그의 방식은 새로운 실험이다. 우회로인 만큼 멀고 지루하지만 정치권처럼 사생결단의 진흙탕이 없어 안전하다. 그러나 정치권의 영광은 검증의 잣대를 샅샅이 들이대야 속이 차는 민심을 만족시켜야 얻는다.

鄭의원의 길은 이제 장애물 많은 검증의 험로로 바뀌었다. 그는 4선 의원이지만 1992년 대선 때 선친(故 정주영회장)이 주도한 국민당 시절을 빼고는 무소속이다. 무소속은 가파른 정치 현장에서 변방의 존재다. 편하지만 정치적 평점을 매길만한 소재가 드물다. 그만큼 그에 대한 인간적 면모,정치적 역량과 비전은 미지수다.

축구에선 단독 플레이에 '현란한 드리블'이란 수사를 곁들여 환호한다. 그러나 정치에선 단독 플레이는 금물이다. 대선가도에서 천시·지리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게 인화(人和)다. 그러나 鄭의원한테는 독선과 독식의 논란이 붙어있다.

그의 주변에선 과거 월드컵 유치 때 "MJ(영문 이니셜)가 외롭게 돈을 써가며 힘겹게 따냈다"는 얘기를 한다. 그러면 정치권과 재계에서 쓴웃음을 곁들인 반박이 나온다. 김영삼(YS)정권 시절 재계에서 유치자금을 수백억원 걷는 등 범국가적 차원의 업적인데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는 것이다. 그런 논란 탓인지 YS는 "그 공로는 유치위의 구평회위원장, 鄭의원, 김운용IOC위원, 이홍구명예위원장"이라고 유치의 논공을 매겨놓았다.

그의 도전에는 부자(父子)2대에 걸친 집념이 있다. 그 집념은 '권력과 부(富)를 함께 가지려 한다'는 논란이 따른다. 반면 "재벌의 정치 참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달라졌다. 깨끗한 정치를 하느냐로 기준이 바뀌었다"는 게 MJ참모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대체적 여론 흐름은 권력과 돈 모두를 탐탁잖게 생각하는 쪽이다. 현대의 역량을 쏟아부은 과거 정주영후보의 과도한 대권 집착은 민심 속에 불쾌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鄭의원이 국회에 신고한 재산은 1천7백18억원이다. 여기엔 '씀씀이가 짜다'는 평판이 따른다. 이에 대해 姜전의원은 "검은 돈을 바라는 일부 정치인의 음해다. 검소하다"고 옹호한다. 그렇지만 '검소함'과 '인색'하다는 평판의 차이를 메우는 것도 장애물 넘기의 과제다. 한나라당에서 거론하는 성장과정·가계(家系)등 궁금한 사생활 공간에 대해 姜전의원은 "있는 그대로 얘기하면 문제될 게 없다"고 주장한다.

DJ정권과의 관계설정 문제는 MJ역량의 본격 시험대가 될 것이다. DJ정권을 '실패한 정권'으로 비난할지, 아니면 공과(功過)를 고르는 쪽인지를 국민들은 지켜볼 것이다.

정풍이 태풍이 될지, 미풍으로 끝날지는 그의 의지와 선택에 달려있다. 이미지와 실제가 차이나면 바람은 금세 수그러든다. 여론은 권력을 얻으려면 돈을 버릴 만큼 그의 그릇이 큰지를 따져볼 것이다. 당장 월드컵의 영광을 나누고 돌리는지를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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