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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은 충동적일까, 계획적일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Sex&Health 바로가기 매스컴의 보도를 보면 금전을 목적으로 강도행각을 벌이는 젊은이보다 성적 폭행을 목적에 두고 여자만 사는 집을 노리는 파렴치한이 더 많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현금과 은행카드, 심지어 예금통장까지 절취한 도둑이 단지 과거의 양상군자(梁上君子)에만 머무르지 않고 부녀자에 대한 성적 폭행을 관행적으로 일삼는 행위가 연일 보도되는 것을 보면, 절도가 범행 동기인가, 아니면 성욕 충족이 그들의 노리는 바인가 모호해진다. 어느 범법자의 진술에서 보면, 처음에는 그냥 훔치는 것에 그치고 현장을 떠나려다가 벌거벗은 여자를 보니 돌발적으로 성욕이 일어나 결국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질렀다는 식의 범행과정 설명이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칼을 들고 남의 집에 침입해 대치하는 상황에서 그렇게 한가롭게 성욕이 발동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여기서 생긴다. 비뇨기과 의사라서 사고가 그런 방향으로 경직되는 모양이다. 눈부시게 발달한 의학기술에 의해 인간의 욕구에 관한 연구가 착착 진행 중인데 아직까지 그 신비한 베일을 벗기지 못한 부분이 벗긴 부분보다 더 많다. 흔히들 성욕은 종족 보존에 관한 욕구로서 생식을 달성하려는 충동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욕의 일부를 지칭하는 것일 뿐 그 본질에 대한 충분한 설명은 되지 않는 답이다. 시험에 출제된 문제라면 겨우 50점을 줄까 말까 한 엉성한 해답인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다시피 남성은 죽을 때까지 생식이 가능하지만, 여성의 경우는 생식 능력과 성교 능력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배란이 있는 기간은 생식이 가능하지만 폐경으로 배란이 없어지면 생식 능력도 함께 소실된다. 하지만 폐경 이후 배란이 없어진 상태에서 여성은 성욕마저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어느 경우는 더 왕성한 성욕을 과시기도 한다. 일찍이 킨제이가 미국 여성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로는 이미 갱년기를 지난 여성들이 거의 모두 성생활의 즐거움을 버리지 않고 살아간다. 이 조사를 근거로 보면 성욕이 곧 생식에 대한 심리적 충동이란 정의는 분명한 오답이다. 그 후 제시된 해답이, 프로이트의 ‘쾌감을 구하는 정신상태’라는 이론인데, 여기에는 신체적 접촉으로 생기는 단순한 쾌감으로부터 시작해 오르가슴이나 심지어 성취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쾌감이 망라되어 있다. 좀 더 전문화된 해석이긴 하나 만족스러운 해답은 아니다. 그래서 다시 제기된 논리가, ‘자신의 성적 욕구가 충족되기를 기대하는 정신상태’라는 난해한 정의다. 하지만 먹음으로써 근육의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이른바 개체 보존의 법칙이라는 식욕 이론에 반기를 드는 학자의 의견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그러면 수면욕에 관해서는 학자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 많은 남성이 흡족한 섹스나 맛있게 먹은 식사 후에 엄습하는 수면욕을 뿌리치기 어려웠던, 리얼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인간의 행동치고 그 어느 것이나 중추신경계의 통제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섹스도, 배고팠을 때도 모두 중추신경의 지시를 받고 욕구 충족의 행위를 달성한다. 절도범이 성 폭행범으로 바뀌는 순간적 변화는 그러니까 본능적 행위가 아니라는 뜻과 같다. 범행을 기획하는 순간부터 그 용서받지 못할 악행을 은폐하기 위해 기획된 행위라고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따라서 재발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면 거세술(去勢術)까지도 형벌방법으로 실용하면 효과적일 것 같은데, 그것은 너무 중세기적 사고방식일까? 곽대희비뇨기과 원장 <이코노미스트 9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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