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기업의 비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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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의 10여개 기업이 포천지 선정 세계 5백대 기업에 들었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서구에 비해 자본주의 역사가 상당히 짧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업들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것을 보면서 이 기업들이 세월을 뛰어넘는 장수 기업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듀폰 같은 기업은 이미 올해로 2백년이 넘었으며 피앤지는 1백65년, HSBC는 1백37년이 넘은 장수기업일 뿐만 아니라 전세계 리더의 자리에 있다.

지난 1백여년은 인간의 역사뿐 아니라 기업에 있어서도 도전적이며 긴 시간이었다. 두번의 세계 대전과 대공황, 끊임없는 과학 기술의 발전은 기업에는 매 순간 전쟁터에 있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런 변화와 도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1백년을 넘게, 또 경쟁력을 강화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어떤 비결이 있을까 ?

첫째, 인적 자원을 가장 중시했다. 인재의 발굴과 양성은 기업의 성공의 열쇠다. 삼성그룹의 창업자가 인재 발굴에 가장 역점을 두었다는 사실은 오늘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 삼성이라는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HSBC그룹은 전 세계를 돌면서 일할 사람은 처음부터 별도로 채용해 관리한다. 알리안츠가 한국의 제일생명을 인수하고 제일 먼저 강화한 프로그램 중 하나는 직원 교육이었는데 교육 시간을 과거보다 다섯배나 늘렸다. 기업이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는 기업만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인재 양성의 주체는 직원들이다. 한국에서 어떤 기업들은 공장 근로자를 다른 공장으로 발령낼 때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이런 시스템 아래에서는 직원들에게 다양한 직무를 통한 경험이나 훈련이 불가능하며 인재 양성에도 장애가 된다. 이런 기업이 1백년 후에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좋은 기업의 훌륭한 직원은 노사 양측이 모두 협조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둘째, 고객의 니즈에 따른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의 경영이다. 마케팅 사관학교로 유명한 피앤지는 리서치에 많은 투자를 하는 기업이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찾아 끊임없이 신제품을 내놓는다. 아기 기저귀를 발명해 전세계 엄마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 것은 좋은 예다. 세계 최대의 실리콘 제조업체인 다우코닝은 기존의 고객들이 규격화된 실리콘 제품을 전자상거래로 살 수 있는 자이아미터라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고객은 컴퓨터를 통해 전세계에서 가장 싼 값으로 실시간으로 실리콘을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이 시스템 개발은 물론 경쟁에서 다우코닝을 더 앞으로 나아가게 한 결과를 가져왔다.

셋째, 장기적인 비전으로 경영을 했다. 요즘 세계 경제계의 화두는 미국 기업들의 회계 투명성이다. 단기적인 주가에 너무 중점을 둔 경영은 경영자로 하여금 미래를 담보로 해 현재를 사는 경영을 하도록 압박하며 급기야는 회계 부정 같은 파문을 일으켜 기업이 도산에 이르는 불행한 사태까지 몰고 온다.

경영자가 제대로 경영을 하면 기업이 몇백년을 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한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언제 이익이 나는지, 그 이익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한 것들이다. 오래 장수한 기업들은 수년 안에 단기적인 이익을 누리고 투자한 회사들이 아니다. 한국에 투자한 대부분의 기업들은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투자를 했다.

한국에도 두산·조흥은행 등과 같이 1백여년의 역사를 가진 기업이 있는데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것은 이들이 글로벌한 기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기업들이 더 발전해 세계적인 리더가 되려면 글로벌한 인재를 육성하고 좀 더 글로벌한 장기적 비전을 가져야 한다. 물론 나름대로 변화와 혁신을 이뤄왔지만 그것은 한국 시장만을 타깃으로 했고 세계를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백년을 내다 보려면 글로벌 인재, 장기 전략, 끊임없는 변화와 혁신이 필수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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