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업 수사관' 진상 밝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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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아들의 병무비리 의혹을 폭로한 김대업씨가 수감 재소자 신분으로 피의자 수사를 맡았다면 검찰의 도덕성은 치명적이다. 징역 1년의 실형이 확정된 사기죄 기결수가 복역 중 검찰청사에서 수사관 행세를 했다는 것은 웃지 못할 코미디다. 법무부와 검찰은 조직의 명예를 걸고 진상을 밝히고 대국민 사과와 함께 관계자를 문책해야 할 것이다.

재소자를 몇달씩 1백40여회에 걸쳐 수사에 참여시켰다면 법 이전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다. 특히 형(刑)을 복역해야 할 기결수를 수사 편의를 위해 수시로 불러냈다면 교도행정까지 엉망이란 의미다. 낮에는 검찰청사에서 수사관 행세를 하던 金씨가 구치소 안에서는 어떤 행형생활을 했을까.

엄정한 법집행은 검찰 업무의 근간이다. 국법 질서 확립의 표상이 돼야 할 기관이 수사 실적에 눈이 어두워 편법·불법을 일삼았다면 이미 검찰이기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다. 만일 재소자의 수사 보조원 활용이 관행이었다면 이번 기회에 뿌리를 뽑아야 한다. 재소자의 수사관 행세가 위법이란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검찰 공보관은 金씨가 병무비리 관련자와 대질한 적은 있으나 수사관 자격으로 병무비리 관련자를 조사한 적이 결코 없다고 해명했다. 또 수감자로서 金씨의 신병관리에 각별한 유의를 했기 때문에 그가 단독으로 제3자를 조사한 경우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간단한 해명 몇 마디로 적당히 넘길 사안이 아니다. 이미 김길부 전 병무청장은 "金씨가 선임 수사관 행세를 했고 검찰 직원도 선임처럼 대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런 시점에서 명백한 소명없이 아무 일도 아닌 양 넘어간다면 검찰의 안이한 인식과 대응은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 법무부와 검찰은 金씨를 수사팀에 참여시킨 경위, 수사 과정에서의 역할 등 '김대업 수사관'의 실체 규명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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