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안테나게이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스티브 잡스 애플 CEO는 ‘프레젠테이션의 전설’로 통한다. 따분한 프레젠테이션을 인포테인먼트로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핵심은 한두 줄짜리 메시지의 강력한 전달에 있다. 안테나게이트(Antennagate). 잡스가 아이폰4의 수신 불량 논란을 안테나게이트라고 압축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폰 역시 완벽하지 않다”고 말한 뒤 “안테나게이트, 아이폰4에만 국한되지 않는다(Antennagate, Not unique to iPhone4)”란 큼직막한 자막을 대형 스크린 위에 띄웠다. 새로운 유형의 게이트를 탄생시킨 것이다.

닉슨 미국 전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유래한 ‘게이트’는 거대한 음모가 숨어 있는 정치적 스캔들이란 의미로 사람들에게 각인돼 있다. 이후 정치적·권력형 비리와 공작의 냄새를 풍기는 사건에는 게이트라는 접미어(接尾語)를 붙였다.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의 ‘지퍼게이트’, 부시 전 대통령의 ‘리크게이트’ 등이 그런 예다. 우리나라에선 ‘박동선 게이트’가 그 시작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정현준·진승현·이용호·윤태식·최규선씨가 연루된 ‘5대 게이트’로 시끄러웠다. 최근의 ‘영포게이트’도 정치적 공세의 측면이 없지 않다.

잡스는 일부 언론에서 간헐적으로 쓰던 안테나게이트란 표현을 이번에 공식화했다. 게이트의 앞에 붙는 단어는 사건의 성격을 규정한다. 그의 선택은 ‘애플게이트’도 ‘아이폰게이트’도 아닌 안테나게이트였다. 제품이나 회사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부품 중 하나인 안테나에서 비롯된 작은 논란에 불과하다는 점을 용어 선택에서 보여줬다. 그래서 안테나 수신 불량 논란에는 정치적·경제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잡스는 “애플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키아와 블랙베리, 삼성 등 스마트폰의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또 “애플이 한국 기업이었으면 좋겠느냐, 아니면 미국 기업으로 세계 1위가 되길 바라느냐”며 애국심을 자극했다.

“스티브 잡스는 악당을 만들어내는 데 매우 뛰어나다. 잡스는 적대자(기존 제품의 한계)를 내세운 다음, 삶을 보다 나은 것으로 만들어줄 해결책을 영웅으로 등장시킨다. 애플의 제품은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다.”(『스티브 잡스 프레젠테이션의 비밀』, 카마인 갈로 저) 잡스는 제품 하자(瑕疵)를 게이트로 만드는 역발상을 통해 위기탈출을 시도하고 있다. 그의 전략이 성공할지, 제2의 도요타 사태로 비화할지 관심거리다. 

고대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