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칼럼] 3류 국가로 가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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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전에 중국 동북지방을 돌아보았다. 대도시는 물론 중소도시까지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었다. 중국인들은 낡고 누추한 단독주택을 버리고 냉난방과 위생시설을 갖춘 근대형 주거시설로 옮겨가고 있었다. 자신들의 목표대로 등 따습고 배부른 ‘원바오(溫飽) 사회’는 이미 이루었고 이제는 모든 국민이 중산층의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샤오캉(小康) 사회’로 접어들었다. 중국은 2050년까지 현대화를 완성시킨다는 계획 아래 10년마다 국내 총생산을 두 배씩 늘려가고 있다. 13억의 인구가 불과 30년 만에 이런 발전을 한 것이다. 중국은 자신들의 체제를 ‘중국 특색 사회주의’라고 말한다. 사회주의의 과제는 “생산력을 해방시켜 현대화를 단계적으로 실현시키는 것”이라고 <중국공산당 헌장>에 명시했다. 중국사회주의는 노동자 계급을 자본가 계급의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생산력’을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우리의 박정희 시대처럼 ‘잘살아보자’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그 목표를 향해 국가의 모든 자원을 동원하는 것이고 그 동원체제가 바로 국가 시스템이다. 중국이 정치적 독재를 한다지만 사람에 의한 독재가 아니라 제도에 의한 통치이다. 공산당은 그 나름의 철저한 내부경쟁 속에서 지도자들을 뽑는다. 자연히 유능한 인재가 뽑힐 확률이 우리보다 훨씬 높다. 그들은 이러한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여 정해진 국가 목표를 향해 앞으로도 몇십 년 뻗어갈 것이다.

반면 한국은 민주주의라는 이름하에 방향을 잃었다. 우리는 산업화에 이어 민주화만 이루면 자연히 선진국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민주화는 되었는데도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민주화가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다. 민주주의라는 명목하에 당 대 당이, 파벌 대 파벌이, 중앙과 지방이 싸우고 있다. 서로의 관계를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피나게 싸운다. 이러니 국가역량을 모을 수 없다. 국가목표는 아예 사라지고 정치인의 권력 목표만 있을 뿐이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지난 정부의 성과는 허물고 새로 시작한다. 권력은 개인에 집중되어 있어 ‘노사모’니 ‘영포회’니 하는 사적 집단에 의해 국정이 운영된다. 민주주의는 포퓰리즘으로 타락했다. 재정이 뒷받침되든 안 되든, 미래를 갉아먹든 말든 표만 모을 수 있으면 무엇이든 오케이다. 학생들의 실력 차이가 드러나니까 일제고사를 거부한다고 한다. 모두 똑같이 만들어 편하게 지내자는 것이다.

옆 나라 중국이 국가목표를 가지고 철저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우리가 지척거리고 있는 사이 중국은 몇 배씩 성장하고 있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는 결국 중국의 경제권 아래 놓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도 민주체제를 허물고 권위주의 체제로 다시 돌아가야 할까? 아니다. 효율적인 민주체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국민을 분열시키지 말고 한데 모으고,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금 체제가 무엇이 잘못됐는지, 국가 발전을 위해 무엇을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되었다. 그 책임은 대통령과 정치인들에게 있다. 여당의 새 당대표가 권력 분산을 위한 개헌을 제안했다. 개헌이 되든 안 되든 이제는 한 사람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제도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이미 한계에 부닥쳤다. 여기서 성장을 멈춘다면 지금의 위상조차도 유지할 수 없다. 정치개혁을 못 한다면 우리는 3류 국가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문창극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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