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만 쓰는 스타 작가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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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정치인·영화배우 같은 유명인이나 다국적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등 거물급들만 작가를 고용, 자신들의 전기(傳記)를 쓰게 하는 등 개인적으로 작가를 활용하는 부류들일까?

근착 워싱턴 포스트지는 '플롯을 살찌우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요즘엔 작가가 작가를 고용해 대중소설을 출간하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보도했다. 유명스타 반열에 오른 일부 작가들의 경우 작가의 이름 자체가 콜라 브랜드 펩시나 의류 브랜드 갭(Gap)처럼 하나의 대중적인 브랜드로 통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들은 더 이상 예술가가 아니고 소설의 줄거리만을 잡는 발상가(plotter)이거나 기술자들로 변하고 있다고 기사는 지적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붉은 10월』『패트리어트 게임』『긴급명령』 등 영화화되어서도 빅 히트를 기록한 베스트셀러의 작가 톰 클랜시다.

클랜시는 자신이 이야기의 굵은 뼈대를 제공하면 이를 토대로 두툼한 소설들을 완성하는 일군의 작가로 구성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물론 책 표지에는 톰 클랜시라는 이름이 버젓이 인쇄돼 있지만 정작 소설은 엉뚱한 사람들이 완성한 것이다.

『영광의 임무(Mission of Honor)』는 제프 로빈이 썼고 『생화학공격(Bio-Strike)』은 제롬 프레이슬러가 썼다. 또 『도망자(Runaways)』는 다이앤 듀안의 작품이다.

클랜시의 성공적인 선례는 다른 작가들에게도 훌륭한 벤치마킹 모델이 됐다.

기사는 '브랜드 작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풍부한 상상력을 우선 갖춰야 하고 작가 개인이 드러나는 사적인 스타일이나 목소리는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또 마른 하늘에 비를 부를 정도의 흥행사로서의 명성도 필요하다.

클랜시의 전속 출판사 펭귄 푸트남에 따르면 클랜시는 "특출한 사실주의와 그럴듯하게 꾸미는 능력, 플롯을 꼬고 면도날같은 긴장감을 조성하는 데 대적할 자가 없는 거장"이다. 이런 방식의 소설 생산은 과거에는 없었던 최근의 현상이다. 톨스토이가 『전쟁』부분만을 쓰고 『평화』는 다른 사람이 쓰는 상황은 상상하기 힘들다. 과거 문학의 거장들은 다른 사람과 협력하기는커녕 스스로와도 불화했었다.

브랜드 작가들이 유행하는 배경은 독자들의 유명 작가에 대한 탐닉 때문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특징이 드러나는 소설이면 실제로 누가 쓰든 상관없는 것이다. 클랜시가 흥행요소들을 제공하는 한 누가 주어와 동사, 목적어를 연결시키든 독자들은 개의치 않는다.

이런 이유로 종종 죽은 작가들이 소설을 출간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로렌스 샌더스는 1998년 사망했지만 계속 그의 이름으로 책이 나오고 있고 VC 앤드루스는 86년에 죽었지만 역시 책이 나오고 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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