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단숨에 해야하고 질질 끈다고 되는 게 아니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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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부진아에서 영어 학습의 전도사가 된 박병태 국립국제교육원 팀장. “1번 읽고, 3번 듣고, 3번 따라 하면 영어가 트인다”고 말한다. 최정동 기자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학부모들이여, 아이들의 학원을 과감히 끊어라. 학습 부진아도, 마흔이 넘은 사람도 영어 말하기의 달인이 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공무원이 있다. 교육과학부 산하 국립국제교육원의 박병태(52) TaLK팀장. TaLK는 재외동포 대학생이나 외국인 대학생들을 농어촌과 산촌에 원어민 교사로 보내 우리 문화 체험과 영어 봉사를 함께 하도록 한 장학 프로그램이다. 학습 부진아로 ‘무학이나 마찬가지’였던 자신이 체험한 영어 정복기이기에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말한다고 한다. 박 팀장은 중학교를 중퇴하고, 젊은 시절 공사판을 전전하다 30세에 공무원이 됐고, 43세 때 국비 유학생으로 미 시러큐스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공무원 사회에선 ‘천연기념물’ 이력을 가진 셈이다.

지난주 서울 대학로 국립국제교육원(원장 정상기)에서 박 팀장을 만났다. ‘나의 인생, 나의 영어’를 들어보기 위해서다. 체구는 작지만 다부져 보였다. “머리 쓰거나, 책 읽는 것은 정말 안 맞았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근데 몸 쓰는 것은 좋아합니다. 체력 관리도 꾸준히 하고요.” 그는 각급 학교나 연수기관의 초청을 받아 영어학습법 강의를 해왔다. 원래 법제처 소속이지만 ‘영어 특기’를 인정받아 지난해부터 국립국제교육원에서 ‘파견’ 근무 중이다. TaLK 프로그램을 총괄하는 그는 영어와 관련된 일을 하느라 하루하루가 즐겁다고 했다. 만나자마자 영어 강의법부터 풀어대기 시작하는 그에게 인생 이야기부터 듣자고 했다.

-어렸을 때 학교가 왜 싫었습니까.
“공부가 싫었어요. 초등학교 때 성적표에 ‘수’는 없었어요. 미·양·가만 수두룩했죠. 학교 갔다 온 것처럼 거짓말 한 적도 다반사고요. 농사철엔 ‘밭에 나가 일을 도우라’는 소리가 반가웠을 정도예요. 경북 영일 출신인데 1971년 마침 고향에서도 중학교 무시험 제도가 시작돼 본의 아니게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시험을 쳐야 했다면 중학교는 안 들어갔을 겁니다.”

지난달 TaLK 프로그램 장학생 연수를 마친 뒤 학생들과 포즈를 취한 박병태 팀장.

박 팀장은 그나마 2학년을 마친 뒤 그만뒀다. “영 취미가 없었죠. 아버지가 퇴학시키겠다고 두 번이나 학교에 찾아왔었어요. 어머니는 ‘함께 죽자’고 하실 정도로 속상해했고요. 학교를 그만두고 그길로 노동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즐거웠어요. ‘난 타고난 육체노동자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뒤늦게 공무원이 되지 않았습니까.
“막노동으로 살았는데 돈을 못 받는 일이 많았습니다. 안정된 월급이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결혼도 앞두고 있었고. 공무원 시험을 보려고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쳤습니다. 7급 공무원이 됐어요. 근데 집사람이 무슨 욕심이 생겼는지 ‘왜 당신은 남들 가는 해외 연수를 안 가느냐’고 해 국비유학 시험에 도전해 봤습니다. 대학교 졸업 인증 학위취득시험(법학사)을 보고 합격했죠. 대학 졸업장 없이 국비유학 시험 본 사람은 아마 저밖에 없을 겁니다.”

-공부는 안 했지만 머리가 좋은 거 아닌가요.
“특강을 하면 저의 아이큐를 물어요. 제 아이큐가 얼만지 모르지만 전 머리가 좋지 않습니다. 확실한 학습 부진아였거든요. 강의 때 제가 강조합니다. 언어 습득에 지능은 관계가 없다고요. 보세요. 우리 주위에서 머리 나쁘다고 우리말 못하는 분 봤습니까. 단지 저는 뭘 하든 집중력이 강한 편입니다.”

-법제처에서 공무원 생활 했으니 문서를 읽어야 했을 텐데.
“법제처 5급 이상 공무원들은 서울대 법대나 고려대 법대 같은 명문대 출신들이 대부분이잖아요. 처음엔 학력도 낮고 나이도 많고 적응이 안 돼 고민을 좀 했는데 제게 맞는 일이 주어졌어요. 인사 이동 때 직원들 책상 옮기는 일은 제가 다 맡았습니다. 7~8년간은 펜대 잡는 일은 거의 안 했습니다. 나중에 법령 심사 파트에서 일했지만요. 그래도 영어학습법 책을 세 권이나 냈습니다. 하하.”

박 팀장은 2000년 행정학으로 유명한 미 시러큐스대 맥스웰 대학원 석사 과정에 들어가 1년 반 만에 석사 학위를 땄다. 영어 학습법을 연구하고 전도사가 되기로 한 것은 이 미국 유학 시절 때였다. “명문대를 나오고 토플 성적이 만점에 가까운 분들, 미국 생활 7~8년이 된 분들이 영어 말하기를 힘들어 하는 것을 보고 사람 뇌 속을 들여다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무학에 가까운 저는 1학기가 지난 다음에 교수·학생들과 큰 불편 없이 말할 수 있었거든요. ‘나는 단숨에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왜 안 될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 뇌에 대해 공부하고 저의 경험을 돌이켜보는 연구를 시작한 거죠.”

-영어는 언제, 어떻게 공부하셨는지.
“막노동을 할 때였어요. 민병철 교수의 영어 회화 붐이 일었죠. 문득 영어 회화를 한번 공부해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서점으로 가서 일본에서 출판된 스포큰 어메리칸 잉글리쉬를 샀어요. 지금은 절판됐습니다. 초급용이었는데 50분짜리 테이프 3개가 있었습니다. 6일 동안 48시간을 집중했어요. 2000개 정도의 문장을 듣고 따라 했습니다. 최초의 영어 공부였는데 그러고 나선 영어는 덮었죠. 근데 나중에 보니 사라지지 않고 제 감각 속에 남아 있었던 겁니다.”

박 팀장은 “뇌 속의 영어 말하기 감각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재의 한 면을 정독해서 한 번 읽고, 한 문장씩 의미 단위로 나눠 3번 이상 듣습니다. 그다음 눈을 감고 세 번 이상 따라 합니다. 발음하기 어려운 부분은 집중적으로 연습을 해야 하죠.” 그게 박 팀장의 ‘1·3·3 P(pronunciation·발음)’ 학습법이다. “암기력은 아무 상관이 없어요. ‘나는 죽어도 암기 능력이 없다’라고 하는 사람도 모국어를 못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 많은 문장과 단어를 암기해서 뱉어내는 게 아니라 감각이 개발돼서 자연스럽게 문장을 생성해내는 기능을 머릿속에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장을 통째로 암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오히려 감각 개발이 더 안 됩니다.” 박 팀장은 “따라 하면서 발성 기관을 자극하고 다시 청각을 자극해 효과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며 “학생이든 40대 회사원이든 모두에게 통용되는 방법”이라고 했다.

-여름 방학입니다. 영어 학원을 다니지 않겠다는 아이들 때문에 학부모들이 고민하는데요.
“그만둬도 됩니다. 학원에 가면 자기 주도 학습이 안 되죠. 언어 습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주도 학습인데 강의를 아무리 많이 들어도 스스로 따라 해서 뇌 속의 감각을 살리지 않으면 내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듣기와 이해력은 생길지 몰라도 말하기 능력은 생기지 않죠. 원어민 교사와의 접촉도 듣고 따라 하기를 통해 뇌 속의 말하기 감각을 개발한 상태에서 하도록 해야 합니다. 홍보로 비춰질 수 있지만 나는 닥터 위콤(Dr.wicom) 같은 학습기를 씁니다. 자기주도적 영어 공부엔 학습법과 교재, 학습기기가 3위 일체가 돼야 합니다. 아이들의 경우 부모들이 세 번 반복해서 잘 따라 하는지 옆에서 챙겨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8시간 6일이면 영어회화 정복한다 48시간 영어공부법 등 영어학습책을 펴낸 박 팀장은 인터넷 블로그(http://cafe.daum.net/twodaysenglish)를 통해서도 자신만의 영어학습 노하우를 소개하고 있다.

“저는 이제까지 큰소리를 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성격도 그렇고요. 근데 영어를 공부할 때는 큰소리를 냈습니다. 발음도 또박또박하게 하고요. 사실 유복하게 사는 분들은 자녀들의 영어 공부를 잘 시킬 수 있는 나름의 여러 방법들이 있을 겁니다. 저는 학원비 내기가 빠듯한 보통의 학부모들에게 저의 방법을 따라해 보길 추천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저를 표본으로 삼으라고 말해주셔도 좋습니다. ‘봐라. 학원에서 영어를 배운 적이 없는데 영어로 강의할 수준이 된 아저씨가 있다’고 말입니다.”

김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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